with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고릴라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가볍고 쉽게 그리고 자주 사용한다.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지그문 프로이트의 책을 읽다 보면 무의식을 그리 쉽게 말해도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미 무의식의 개념은 대중화되었지만 그 개념을 공간화 또는 시각화한다면 평생을 돌아봐도 다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면 이런 장면도 좋겠다 싶은 그림책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자주 찾아오는 나는, 그럴 때마다 안전한 곳을 서성거리거나 책을 들추거나, 영화목록을 검색하곤 한다. 유명하진 않지만 자기만의 색이 있는 그림책 ‘잠이 오지 않는 밤에’의 제목을 본 순간 ‘그림책 안에 나와 같은 이가 있겠구나.’ 싶어 반갑게 책을 펼쳤다. 주인공 엘리사는 세상도 자기 빛깔을 모두 내려놓는 모두가 잠든 밤, 친구에게로 향한다. 낮과는 다른 밤의 풍경은 현실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무와 풀, 모든 풍경이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색감도 물체도 매우 환상적인 그곳이다. 잘 자고 일어나 놀거리를 찾는 아이처럼. 엘리사는 친구 에스테발도를 만나 함께 한다. 캄캄하고 무서운 세계가 아닌, 신비하고 오묘한 공간에서 친구와 함께하니 두려움보다는 그 시간을 매우 즐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그림책의 원제 ‘Dermevela’은 스페인어로 선잠을 뜻한다고 한다. 잠이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얕은 잠에서 자주 깨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잠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하여 숙면은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건강에 자신할 수 없는 나는 무엇보다 잠과 스트레스에 관심이 많다. 내 건강을 위협하는 적신호가 바로 불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런 생각은 나의 불면의 날을 스트레스로 만들었다. 병원에서 수면제 처방도 받아보고 잠을 유도하는 약품도 사 먹었다. 상담학을 전공하면서 긴장완화를 위한 호흡법과 잠자리 명상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지금도 불면의 밤은 자주 찾아온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엘리사처럼 그곳, 그 세계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에스테발도와 나란히 누워있는 엘리사처럼 편안하게 그 시간을 보낸다. 잠으로 들어갈 때까지.
의식의 세계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 무의식의 세계는 열린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상태도 아닌 시간은 나의 정신활동을 관찰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아침에 찌뿌둥한 상태로 일어나 드는 생각은 지난밤 쓸모 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괴롭다는 것이다. 일찍 잠이라도 들었다면 나의 건강에 쓸모라도 있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신체 현상이 아니라 심리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꿈은 수면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면을 돕는다고 했다. 잠을 방해하는 심리적 자극을 환각적 만족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제거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의견에 비추어본다면 이 시간은 쓸모없다는 생각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의식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시간 개념이 없는 모순의 상태에 나를 맡기다 보면 스르륵 꿈의 세계로 그리고 외부를 향해 있던 자아를 온전히 거두어들인 상태인 완전한 휴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쓸모없다 여기며 괴로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선잠의 세계, 꿈의 세계에서 기억하는 내용은 본래 내용이 아니며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왜곡된 대체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고릴라’에는 한나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고릴라는 잠들어 있는 중에도 완전한 정신 활동을 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한나는 아버지와 놀이동산에 가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아버지를 살피는 한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버지는 식탁에서 조차 신문을 읽거나 책상에 앉아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한나는 아버지가 매우 바쁘기에 자신과 소통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정이 있겠지만 아이가 아버지의 사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자녀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방해하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은 한나는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기다린다. 해 질 녘이 되어 실망과 슬픔과 함께 방구석에 앉아 있는 한나의 마음에 어릴 적 부모님의 관심 어린 애정을 받고 싶던 내 마음이 더해져 쓸쓸함이 깊어진다. 가장 좋아하는 고릴라 인형을 안고 잠자리에 든 한나에게 달빛을 타고 소망이 실현된다. 고릴라는 아버지의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한나와 함께 외출한다. 고릴라는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힘이 세며 한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한나는 마음 깊이 숨겼던 소망을 성취한다. 아침이 되어 한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소원이 꿈을 유발하며 소원 성취가 꿈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프로이트의 해석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이야기다.
나는 이 그림책을 정말 좋아한다. 아빠를 좋아했던 마음이 보이는 걸까. 아니면 아빠에 대한 아련한 사랑과 그리움 때문일까. 슈퍼맨처럼 무엇이든 잘했던 너무 멋졌던 아빠,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눈빛을 가진 아빠. 작은 끄덕거림만으로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몸짓을 가진 아빠. 나이가 든 이후로 아버지라 부르며 유아적 환상에서 멀어졌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그리워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아빠였던 기억에 머무르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현상을 어린 자녀가 갖는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환상이자 소망이라고 말했다. 꿈에서 상징적으로 대체되는 것 중에 부모가 있다. 그림책 ‘고릴라’는 한나가 아빠를 대체한 상징이다. 한나는 환각 체험의 형태로 소원을 성취함으로써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지쳐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