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아지게 하는 대상들

by 꽃에 미친 김 군

by sunshine

1. 그림책

요즘 눈에 들어오는, 아니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책이 한 권 생겼다. 동양화풍의 그림으로 구성된 이 책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화사한 색상의 꽃들은 이름이 어려워 말하기 어려운 서양 태생의 꽃이 아닌, 어려서부터 보아온 꽃들이다. 목단, 나팔꽃, 국화, 초롱꽃 등.

2025년 대한민국 그림책상에서 특별상으로 선정된 것을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 본 것이 첫 만남이었다. 반납 이후 눈앞에 아른아른 거리는 것이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다른 책에 비해 가격이 만만하지 않기도 했고 물건을 더 이상 소유하지 않겠다는 내 삶의 모토에 반하는 일인 것 같아 망설이다가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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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소개하지 않고 오래 구구절절했다. 그림책의 제목은 ‘꽃에 미친 김 군’이다. 작가 김동성은 ‘엄마 마중’의 그림을 그린 이다. 엄마 마중에서 느껴지던 다정한 옛 서책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주인공 김 군은 실존하는 인물로 조선 후기 화가라고 한다(정민작가의 미쳐야 미친다에 소개됨). 그의 그림이 아직 발견된 것이 없어 아쉬운 감이 있지만, 박제가는 김덕형의 백화보의 서문에 김덕형에 대해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성을 익히는 것은 오직 벽(癖)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 그림책은 한 가지에 몰입한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로 매우 전투적일 것 같지만 음악이 들리고 향기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낭만이 있다.


2. 정원

관심사가 자주 바뀌는 나는 몇년 전부터 정원 가꾸기에 빠져있다. 김 군처럼 꽃에 미쳐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몰입하는 일이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이다. 나는 꽃을 만나기 위해 늦가을부터 씨앗을 받는다. 봄이 오기 전에 베란다에서 씨를 발아시키고 정성으로 돌본다. 작은 싹이라도 나오면 호들갑을 떠며 애지중지하다가 정원으로 옮겨 심는다. 혹시나 꽃샘추위에 얼어 죽지나 않으려나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이름 모를 새싹도 유심히 보면서 혹시나 꽃을 보여줄까 뽑기를 망설인다. 때에 맞춰 꽃 봉오리가 생기면 나는 세상을 얻은 것만큼 기쁘다. 게다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으로 활짝 피어나는 꽃을 만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올해는 이른 봄, 튤립과 수선화를 시작으로 작약, 수레국화, 마가렛, 수국, 애키네시아, 버들마편초, 장미, 국화, 구절초, 달리아, 백일홍 등을 심었다. 입동을 앞에 둔 지금, 나는 다시 씨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 군처럼 나도 하루 종일 꽃밭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무엇을 지나치게 즐기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소녀적부터 취미는 많았지만 어느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향이었다. 그런 내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요즘 인★그램이라 불리는 SNS를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접한다. 특히 개인 정원을 많이 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게 된다. 김 군의 정원처럼 그들 정원은 너무 멋지다. 어찌 저리 할 수 있을까, 나와 또래로 보이는 이들은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3년 차, 7년 차 10년 차 등, 자신이 정원과 함께한 시간을 소개하는데, 아직 초보인 아직 부럽기만 한 마음이다. 그들의 정원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몰입이 부럽다.나는 이런저런 핑계가 참 많은 사람이다. 큰 병을 치렀기에 체력이 약하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고,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말이 지금 상황에 딱이다. 이것이 핑계인지 회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김 군은 절로 피어나는 나팔꽃을 보는 순간 꽃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초롱초롱 아이의 눈빛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다. 어린 김 군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이 한결같았다. 무엇이 그를 한결같게 했을까? 많은 사람의 ‘미치광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것이 그에게는 어떠했을까. 가족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김 군을 만나 묻고 싶어진다.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지금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을 향한 시선과,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 아닌가.


3.사람

예전의 나는 좋아하는 것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정원도 그렇지만, 사람들도 그렇다. 특히 천재적인 사람들, 아니 어쩌면 범인이지만, 자기의 일을,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일을 하러 나가는 것 외에 외부 활동을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적지만,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난다. 60 인생 처음으로, 영상을 찾아보는 이들이 생겼다. 뮤지션 이찬혁을 보면 나이와 공감대를 떠나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박정민도 그렇다. 문형배 전 법관도 그중 한 명이다. 내게 그들은 김 군처럼 보인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 직업, 사람 등을 볼 때 평범하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있다고 모두가 그들과 같지는 않다. 그들은 미쳐있다. 그럼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견딘다.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무엇엔가 미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미치지 않고서는 삶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아니하면 일정한 정도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주 가끔은 나도 무엇엔가 미쳐있고 싶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미치지 않아 안심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낸다. 더 아프게 고민하고 몰두하는 삶에 동반되는 고통을 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저 아래로 가라앉는다. 나는 나를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에 자신을 세운다. 그리고 그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경계의 밖은 내가 결코 건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잘못하다가는 이상 속에 갇히기 때문이다. 경계, 한계를 인식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조급함에 밀려, 기대에 밀려 떠밀리셔는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미치기보다는 적당히에 안주하며 나를 위로한다.

꽃을 적당히 좋아하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원으로 향한다. 나 대신 나비와 벌, 길고양이, 고라니가 정원을 독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면 얄밉기도 하지만, 나의 정원에 와서 즐겨주는 이들이 많아 좋다. 꽃을 즐기는 나와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가꾼 정원에서 즐기는 이가 있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지난여름 제주도의 한 책방에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책을 샀다. 작은 책방에 들어선 순간 화려한 표지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봄의 이름으로’. 작가가 좋아하는 콜레트인데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이라는 카피가 마음을 파고든다. 책을 펼쳐든 순간, 나는 콜레트의 정원으로 초대된다. 장미, 백합, 나비꽃, 등나무꽃 등 75세의 콜레트가 정원을 내려다보며 쓴 스물두 편의 식물 에세이는 그녀의 삶의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콜레트의 소설에서 그녀의 정원에 대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식물이야기로만 엮여있다니.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나는 지금 내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다. 정원, 책, 사람, 이 모두와의 대상관계 덕분이다. 생후 초기에 완성되어야 했을 안정적인 대상관계를 지금 이루어가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짧지만 긴 것이 인생인데, 어느 시기면 어떨까. 늦으면 늦은 대로 이르면 이른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이 어제보다 내일이 오늘보다 1 나노미터만 나아가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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