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멈출 수 없는 고통

with 가시 소년

by sunshine

상담사로 살아오면서 많은 이에게 치유를 돕는 책들을 소개해 왔다. 동료와 지인, 내담자, 수강생 등은 내가 독서치료 기법을 심리상담에 적용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질문해 온다. ‘어떤 책을 읽으면 치유가 될까요?’ ‘이럴 때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자기 치유를 위해서, 또는 치유가 필요한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묻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개의 독서치료사들은 치유목록을 가지고 있어 선뜻 추천해주기도 하지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치유 도서가 될 수 있기에 정답은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무의식은 그 글에 접속되기 때문이다. 시각을 통해 들어온 글이 정신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의 감각이 깨어나면서 위험을 감지하거나 동일시하거나 또는 그 순간을 회피하는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신체 감각이 먼저 반응하여 눈물로, 두근거림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같은 책이라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독자로 하여금 도망칠 수 없게 한다. 이미 우리의 정신에 빠르게 접속하는 것으로 검증된 책으로 많은 내담자가 반응한 책이다. 이런 책은 장르가 그림책이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에세이, 고전이, 자기 개발서가 될 수 있다. 그중 한 권이 그림책 ‘가시 소년’이다. 온몸에 가시가 돋아난 소년이 그려진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책을 펼쳐보면 설상가상 가시 소년의 입에서는 가시가 화살처럼 쏟아져 나온다. 아주 작은 가시 하나가 우리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잘 안다. 그런데 온통 가시 투성이라니. 누가 과연 소년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


image01.png 가시 소년/권자경


소년의 가시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걸까. 태어날 때부터 가시 소년이었을 리 없다. 나는 그림책을 보며 그 가시들이 치유되지 않은 소년의 고통과 아픔, 상처라고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문제가 그것이다. 외부로부터 날아와 어느 순간 나에게 입혀진 가시 옷. 그 가시들은 지금 당장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불안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에 휩싸일 때마다 쏟아낸다. 가시는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이런 현상에 정신적 진단을 내린다면 외상 장애라고 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자주 사용하는 트라우마가 원인이다.


그림책의 가시 소년이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다. 부모의 싸우는 모습,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짐작할 뿐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라고 하면 총기 사고나 열차 사고,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이나 자연재해 등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한 사건이나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상처도 트라우마가 된다. 사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이가 부모로 인해, 직장 상사로 인해, 연인으로 인해, 왕따 경험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한다. 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상처로 인한 고통이 해결되지 않고 미해결과제로 남아, 살아가면서 그 고통을 재경험하는 것을 트라우마로 정의한다. 가족의 무관심에서 학교에서의 왕따 경험으로 그리고 직장이나 군대에서의 부적응 경험으로 이어지면서 반복적으로 외상을 경험한다면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싶다. 그런데 특별할 것만 같은 이런 상황을 상담 현장에서는 자주 본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데 가족도 친구도 더 이상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나는 너무 외롭고 절망적입니다. 이제 나에게는 죽음만이 남아있어요.’ 60대의 여자분이 한 이야기다. 그녀는 원가족의 상처와 고부 갈등을 겪으며 살아왔다. 내색하지 않고 이겨내려 애썼으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남편과 고통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절망하면서 폭발적으로 분노를 일으키게 되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며 우는 그녀의 모습에 주위의 사람들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게 되었다.


자신이 트라우마로 인해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다고 통찰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과도한 각성과 과민한 기분에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스스로 해결하고 견뎌내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징벌이다. 마음의 수양을 통해,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았을 때 가능한 일인데 고통의 순간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지나간 일이니 극복하라고,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견뎌보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종종 말하는 이들을 보았다.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들은 알까. 나는 그것을 친절한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는 거야,’라고 들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이겨내던데 나약해서 그래.’라고 심리적 나약함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가시 소년, 가시 청년, 가시 어른, 가시 노인이 된 사람들. 가시로 인해 스스로도 고통받고 대인 관계도 무너진 이들을 본다는 것은 너무도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다. 온몸으로 발산해 내는 부정적인 기운은 상대방을 무력화시킨다. 가시 소년이 원하는 것은 웃으며 부모 앞에, 친구 앞에 서고 싶은 것이다. 불안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 찾아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은 그것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이가 함께 할 때 생긴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이 시작은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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