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with 오늘 상회

by sunshine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그닥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의 아침만큼은 참 좋아한다. 겨울 아침은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어스름한 새벽의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하루를 조급하지 않게 시작하게 된다. 우선 베란다로 나가 블라인드를 올리며 해를 맞이하고 밤새 답답했을 식물들과 나를 위해 창문을 연다. 겨울의 공기는 날카롭게 입으로 들어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심장을 찌른다. 허리끈을 질끈 묶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농부의 아낙처럼 비장하게 오늘을 맞이한다. 아파트 앞 동의 작은 창으로 쏟아지는 불빛 위로 안개가 걷히듯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보며 몇 초뿐이지만 경건한 기분이 든다. 마치 오늘을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날은 오늘만 같았으면, 어떤 날은 오늘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image01.png 오늘 상회/한라경/노란상상

그림책 ‘오늘 상회’의 시작은 나의 겨울 아침을 닮았다. 새벽이면 불을 밝히고 오늘을 파는 가게 ‘오늘 상회’. 가게의 주인은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병을 닦으며 오늘을 맞이하는 손님을 기다린다. 오늘을 마시러 오는 손님을 위해 준비한다. 첫 손님으로 바쁜 회사원이 온다. 이어 손톱 밑이 까만 노인과 진한 향수를 뿌린 아저씨가 온다. 주근깨 소년과 소녀도 오늘 상회를 찾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오늘 상회를 찾아오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할머니도 찾아온다. 할머니는 꼬마였을 때 오늘을 더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소녀였을 때는 친구들과 몰려와 오늘을 빠르게 마시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늘을 같이 마시기도 했으며 각자의 오늘을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하던 사람의 오늘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는 오늘 상회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워 벤치에 앉는다. 그녀에게는 많은 오늘이 있었고 그 오늘은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무거워진 그녀의 발걸음이 내 걸음 같아 나도 그녀를 따라 벤치에 앉는다.


그림책을 보며 나의 오늘과 많은 이들의 오늘은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오늘을 맞이한다. 매일 맞는 오늘이지만 그 매일은 참 다르다. 어느 날은 맛집 앞에서 내 차례가 어서어서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듯 오늘을 맞는다. 또 어떤 오늘은 맞이하고 싶지 않아, 조금만 조금만 더 늦게 맞고 싶어 이미 깨버린 잠을 청하며 어쩔 수 없이 맞기도 한다. 그림책 ‘오늘 상회’에는 ‘오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반복적으로 맞는 오늘이지만 새로이 하루를 시작하는 오늘을 마시러 오늘 상회에 오는 이들인 우리에게 “네 오늘은 어떠니?”하고 묻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오늘을 맞는 이들은 생존자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을 살아낸 수많은 이는 모두 생존자라고 말하고 싶다. 생존자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 있는 사람. 또는 살아남은 사람’이다. 나는 살아 남았고 살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직업적 연유가 크다. 상담실에서 생존자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나며 나는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들이 살고 싶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갓 고등학생이 된 A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의 B는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오늘을 맞이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이다. 아침이 오는 것이 싫어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A는 철학적 대답이 필요했을까? B는 정말 죽고 싶어서일까?


그들처럼 나 또한 오늘을 맞이하기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생존자임을 인식하게 된다. 왜 살아야 하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묻고 나에게 답한다. 그리고는 내가 살아왔던 수많은 오늘을 생각한다. ‘편하게 생각해.’ ‘뭘 그리 깊게 고민해.’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명쾌한 답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단지 오늘이 아니다. 그동안의 오늘이 오늘을 맞는 나를 결정한다.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의 가치는 감정으로 지급되어 기억으로 남는다. 벅찬 감동으로 기억되는 오늘은 두고두고 내 삶의 가치를 높여주기에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기대하며 맞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오늘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관여됐을 수 있으며 사회가, 그의 부모가 관여됐을 수 있다. 나의 무심함이, 사회의 무심함이 그들을 아프게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여기서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애쓴다. 내가 만난 내담자들의 핵심 문제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오늘을 맞이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나를 위해 오늘을 잘 보내야 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나는 이들을 위해 오늘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오늘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고 로컬 푸드점에서 반찬을 사고 친구 집으로 가 같이 드로잉을 했다. 친구는 내 그림을 나는 친구 그림을 칭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밥 먹자고 전화할 친구가 있어 감사했고,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있어서 좋았다. 운전할 수 있어 감사했고 검색해서 찾아간 카페가 마음에 들어 행복했다. 게다가 커피까지 맛있어 뿌듯했다. 친구는 드라이브가 좋다며 기분 좋아해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행복해하니 나도 행복했다. 영하의 날씨는 춥고 바람도 불었고 절약해야 하는 삶이라 비싼 밥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오늘을 잘 보내서 고마웠다. 내일이 오늘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오늘을 잘 보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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