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책 심리수업

초등학생 대상 집단상담

by sunshine

“아이고 더워라.”가 연신 터져 나오던 2024년 여름.


오랜만에 초등학생 대상 집단 상담을 진행했다. 관내 초등학교의 교육 복지실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4,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의뢰해 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집단 상담을 부탁했던 학교였는데 개인 일정으로 사양을 했던 터라 쉬고 싶은 마음을 접고 의뢰를 받아들였다. 센터에서 개인상담으로 초등학생들을 만나고 있지만, 아동 대상의 집단상담은 오랜만이라 가벼운 설렘과 긴장이 있었다. 기관의 담당자와 의논하여 1회기에 60분으로 1일에 2회기씩 진행하여 5일간 총 10회기로 일정을 계획했다. 목표는 대인관계 능력 향상이었고 그림책을 매체로 한 독서치료 기반 집단상담이었다.


체감 온도가 섭씨 40도를 가볍게 넘기던 2024년의 한여름 외출은 쉽지 않았다. 냉방이 잘 되는 차로 이동했지만 차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부터 강렬한 태양에 바로 항복하고 싶어지는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 집단상담이라니, 방학 중인데 아이들이 오겠나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체 6명 예정이었던 인원이 4명으로 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았다. 오히려 시간보다 먼저와 나를 기다려준 아이들이 신기했을 정도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여러 이유를 대며 힘든 구실을 찾는 나와는 달리,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탐색하는 아이들을 보니 핑계로 허비하는 순간이 결국은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림책 활동을 운영하는 여러 선생님은 다양한 활동과 재료를 가지고 시간을 운영할 것이다. 그들의 정성과 역량은 늘 부럽다. 대상이 아동이었을 때 정말 필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강점은 상담가라는 전문성이므로 최소한의 매체로 최대한의 마음을 이끌어내는데 집중하고자 하였다. 아동이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선생님, 친구와의 관계에서 잦은 갈등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첫째, 자기 자신과 잘 지내야 하며 둘째, 주변인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적응’이라고 불여 말한다. 그렇다면 이번 집단에 모인 집단원들은 자기와 잘 지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타인과도 잘 지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10회기에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한 목표와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였다.


1회기는 자신이 명명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림책으로 ‘뭐라고 불러야 해?’를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며 우리는 모두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했다. 이어서 김광규의 시 ‘나’를 낭송하고 소감을 나누었다. 집단원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패러디 시 쓰기’ 활동을 안내했다. ‘할머니는 나를 우리 강아지’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수줍어하던 학생과 ‘엄마는 나를 돼지’라고 부른다던 집단원이 기억난다. 전자는 엄마 없이 아빠, 조부와 사는 학생이었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강아지로 불릴 때 어떤 기분인지를 들려주었다. 후자는 자신은 아무것이나 잘 먹기에 돼지로 불린다고 말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자신도 강아지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2회기에 우리는 그림책 ‘나는요’를 함께 읽고 여러 동물이 가진 특징처럼 나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활발하지만 조용하기도 한, 내 안의 상반되는 모습을 나란히 놓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입체적으로 보도록 안내했다. 추후 활동으로는 다양한 동물 중 하나를 나와 동일시해 보고 클레이로 만들어 하나의 원에 구성해 봄으로써 어쩌면 나에게도 있지만 타인에게도 있는 모습을 시각화하도록 했다.


아동 대상의 집단상담에서 참여자는 6인 이내가 좋다. 이번 집단에서는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인원이 적어 활동 중에 보이는 아동의 모습과 대화에 관한 피드백을 바로바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1일 프로그램을 마친 후 학생들이 나에게 피드백을 해주었다. ‘선생님은 참 친절해요. 재미있어요.’ 그러면 얘들아 내일도 오렴, 오는 길이 많이 덥겠지만 우리 내일도 만나자.

우리는 이처럼 5일을 만났다. 다른 일정이 있어 중간에 나올 수 없다던 학생도 마지막까지 잘 참석해 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결정했는지 묻자. “여기가 더 중요한 것 같아서요. 빠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해주어 기특하고 고마웠다. 마지막 시간에 그동안 함께 본 10권의 그림책 목록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것을 고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놀랍게도 다양한 책들을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의미를 잘 설명했다. 집단원들은 5일 동안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다.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잣대로 짐작하던 모습에서 행동 이면의 생각과 감정을 궁금해하고 질문했으며,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던 집단원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단원 간에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결속력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훌륭한 참여자들 덕분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50여 년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서로 진실한 대화를 했으며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이 차이를 느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집단을 모두 마치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나와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당황했다.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학생들은 나에게 ‘오은영 박사님’ 같다고 하면서 치료자로서의 신뢰감을 보였다. 나를 보고 요즘 최고의 멘토로 칭송받는 이를 생각하다니, 최고의 칭찬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더운 건 참기 괴로운 고통인데, 인간관계에서의 따뜻함은 뜨거워도 고통이 아닌 행복과 기쁨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만나고 싶으며, 혼자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던 아동들을 보며 절실한 마음이 보여 안타깝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우리를 살린다. 그들에게 친절한 따뜻함이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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