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 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입었다.
황부자집 큰 손녀딸에게만 주어진 특혜였다.
밑으로 두 명의 여동생들에겐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동생들은 옷도 신발도, 심지어 책가방까지 내 것을 물려받았다.
계집애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은 나에게만 예외였다.
만석꾼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서울로 상경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끝 무렵이었다.
딸만 줄줄이 낳았던 아빠는 할아버지의 차별에 어떤 항변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서울로 이사를 온 뒤, 아빠는 특별한 날이면 직접 자식들의 새 옷을 챙겼다.
학교 입학과 졸업식에는 물론, 추석이나 설날이면 자식들 모두에게 명절 빔을 사주셨다. 할아버지의 차별에 상처가 났을 동생들에게 아빠가 사준 새 옷은 특효약이 되었다.
아빠는 명절을 앞두고는 늘 나와 함께 동대문시장으로 향했다.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골라 담아라”
동대문시장 골목, 커다란 리어카 마대 앞에서 동생들 몫까지 수십 벌을 골랐다. 백화점에서 옷 한 벌값이면 동대문시장 리어카에서는 열 벌은 족히 살 수 있었다.
아빠는 가방 속에서 포대 자루를 꺼내 내가 골라놓은 옷을 꾹꾹 눌러 담았다.
빵빵해진 포대 자루를 짊어진 아빠의 어깨가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새 옷을 한 보따리씩 받은 동생들은 입고 벗고를 반복하면서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나는 가끔 두 딸아이와 함께 남대문 새벽시장으로 옷을 사러 다녔다.
조카들 설빔을 살 때도 남대문시장 아동복 매장 앞 마대를 자주 이용했다.
아빠와 함께 갔던 동대문시장 리어카 마대 쇼핑은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런 행복한 추억을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