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by 황훈영
푸짐한 감자탕은 힘든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였다.


응암동 대림시장 골목은 감자탕으로 유명했다.

두툼한 감자와 돼지뼈를 배추나 시래기와 함께 푹 고아낸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커다란 냄비가 넘칠 정도로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감자탕은 허기진 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한동안 공사장에서 십장을 하셨던 아빠에게 감자탕집은 고된 노동의 피로감을 풀어주는 최고의 맛집이었다. 아빠는 공사장에서 함께 일하셨던 인부 아저씨들에게도 배불리 성찬을 대접할 수 있다며 감자탕에 푹 빠져있었다.


“큰 애야! 아빠 아저씨들이랑 감자탕집에 와있다. 얼른 뛰어오너라”

나는 중학생 때부터 아빠의 부름에 이끌려 감자탕집 단골손님이 되었다.

대림시장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커다란 감자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단숨에 시장으로 달려갔다.


식당은 아저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얼큰하고 구수한 감자탕에 소주잔을 부딪히며 희노애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시끌벅적한 식당 분위기가 편안했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 왔네~~”

아빠와 함께 있는 아저씨들 모두에게 나는 기특한 딸내미였다.

아빠는 살점이 두둑하게 붙은 돼지뼈를 골라 내 접시에 덜어주었다.

커다란 알감자도 빠지지 않았다.


허기를 달래는 데 감자탕만큼 든든한 음식은 없었다.

술잔이 열심히 돌아갔지만, 속 쓰릴 걱정도 없었다.

푸짐한 감자탕은 힘든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였다.

감자탕의 이런 진가(眞價)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학시절,

짱돌과 병을 나르고, 최루가스를 피해 도망치다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루 종일 길바닥을 전전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찾아간 곳도 감자탕집이었다.


내 아이들도 감자탕을 무척 좋아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일산 집 앞‘청기와 감자탕’은 단골 식당이었다.

아빠랑 같이 먹었던 감자탕의 행복했던 그 맛을 딸아이들에게 대물림했다고 할까. 입맛도 그 시절의 행복과 함께 전이되는 것 같았다.


나는 먼 길 떠나는 후배와도 감자탕으로 푸짐한 한 끼를 나누었다.

타지에서 홀로 유학하는 시간 동안 그의 허기를 달래주고,

고향의 따뜻함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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