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속정이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탈한 성격과 서민적 풍모 덕분에 누구와도 격의 없이 어울렸다. 나는 아빠의 성격과 외모를 똑 닮은 딸이었다.
1997년 2월 어느 날 남편의 대학원 졸업식이 있었다.
아빠는 사위의 대학원 졸업을 축하해주려 응암동 행운등심에 점심 예약을 걸어놓았다. 행운등심은 아빠의 고향 후배가 운영하는 곳으로, 자식들 졸업식 때마다 갔던 단골 식당이었다. 그 자리에는 시어머니와 큰형님도 함께 했다.
시어머니는 그날 싱싱한 해물을 한가득 싸 들고 올라오셨다.
아빠와 시어머니는 우리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
불판 위에서 한우 등심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불쑥 시어머니에게“사돈이 부산에서 공수해 온 해물부터 맛보고 싶은데요”라고 하셨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티로폴 박스를 풀었다. 해삼, 멍개, 게불, 산낙지까지 각종 해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세상에나~~진짜배기 술안주만 골라오셨네요.”
아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빠는 횟집에서도 활어회에 곁들여 나오는 해삼, 멍개, 개불 등을 더 좋아했다. 아빠는 얼마나 맛나게 드셨는지 그날의 해산물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셨다.
언젠가 아빠는 부산에서 이모부가 운영하는 석재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짓고 있는 건물 외벽에 붙일 대리석을 직접 고르기 위한 출장이었다. 그날의 출장에는 오랜만에 큰이모도 만날 겸 엄마도 같이 내려갔다.
석재공장에서 일을 다 끝내고 아빠는 우리 시댁을 들르시겠다며 어느 시장에 계시냐고 물었다. 엄마는 갑자기 방문하면 시어른이 놀라신다며 극구 말렸다. 하지만 아빠는 부산까지 왔다가 큰애 시어른을 보고 가는 게 예의라며 막무가내로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시어머니와 큰형님이 육고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한우 등심을 한 보따리 사 들고 가셨다.
2000년대 초반 전통시장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시장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선했다.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바꾸고, 시장 안에 아케이드 지붕도 설치해서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그 시장을 갔을 때는 거의 난전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부산시청이 이전해 온 뒤로 시장 한 켠이 회센터로 바뀌면서 횟집 손님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그 시장에서 40년째 해물을 팔고 있었다. 회센터에 온 손님들에게 해삼, 멍게, 산낙지, 게불 등 해물을 대주는 일이 그나마 짭짤한 수입이 되고 있었다.
아빠가 시장에 들어서자, 큰형님은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나를 처음 맞이했던 것처럼 두 팔을 벌려 부모님을 반겨주셨다. 아빠는 “오돌오돌한 해삼 한 접시 먹고 가도 되겠습니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어머니는 일찌감치 장사를 파하고 부모님과 함께 회센터로 들어가서 산낙지, 해삼, 멍게를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머니는 아빠가 해물을 좋아하신다며 우리가 부산에 갈 때마다 해물을 한 보따리 싸서 들려 보냈다. 아빠도 은근히 시어머니표 해물을 기다리셨다.
그런 아빠가 2017년 6월 1일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시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서 아빠의 장례에 오지 못했다. 아빠 장례를 치르고 한 달 만에 나는 부산에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아빠를 대신해서 한우 등심을 사드렸다.
“정 많은 어른이 너를 두고 어찌 가셨을끼고....”
어머니는 그날 고기를 한 점도 드시지 못했다.
나도 어머니 손을 붙들고 목놓아 울었다.
어머니는 아빠의 부고를 접하고 계속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빠의 넓고 깊은 속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빠가 해물 핑계로 불쑥 사돈을 찾아왔지만, 진짜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한우를 챙겨주고 싶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