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

by 황훈영

나는 어린시절 두 번의 신문배달을 경험했다.

처음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 한국일보 보급소가 있었다. 신문 내지로 광고지를 끼워 넣는 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급소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짜장면을 먹는 아이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달콤한 짜장 냄새에 끌려 신문배달부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나이가 문제였다. 보급소장은 내게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문서 위조를 시도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신문 보급소로 달려갔다.

수백 부의 신문을 돌리고 나면 저녁밥 때를 놓쳤다.

주산학원도 가지 못했다. 그래도 매일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러나 짜장면이 주는 행복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주산학원을 땡땡이친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빠는 처음으로 매를 들었다.

양쪽 다리가 퉁퉁 부어 올랐다.


두 번째 신문배달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국민주를 모아 한겨레신문을 창간했지만 구독자 수가 많지 않을 때였다.

대학생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배달을 하면서 구독운동에 동참했다.

한겨레신문 독자들은 주로 산동네나 비탈진 주택가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배달노동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비해 몇 배로 힘들었다.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의외의 독자도 있었다.

161번 버스 종점 부근에 홍제동 대공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겨레신문을 20부나 구독했다.

동트기 직전이라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시각.

나는 깔깔이 안감을 넣은 방풍 방수가 되는 시꺼먼 외투를 입고 있었다.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있어서 누가 보아도 건장한 사내로 보였다.

대공분실 철문 밑으로 신문다발을 집어넣고 돌아 나오는데

161번 버스 기사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이봐요. (버스) 뒤를 좀 밀어주쇼.”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밀었지만 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부르릉.......”

엄청난 배기가스를 뿜어내며 버스가 출발했다.

무언가 기특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서둘러 신문 뭉치를 들고 버스 종점을 빠져나왔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공사장으로 새벽출근을 하는 아빠와 딱 부딪혔다.

순간 ‘나는 죽었구나’싶었다.

온몸이 빳빳해지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나는 절대 데모는 하지 않고,

대학교 3학년 때 외무고시에 합격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대학에 갔다.

그런 딸래미가 엄동설한에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빠의 속내는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텐데도

아무 말씀이 없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를 하셨다.

“얼른 가서 밥 먹고 학교 가라.”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가는 아빠의 등을 멀뚱이 바라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작가의 이전글아빠의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