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에 아빠의 귀가 시간은 늘 자정을 넘겼다.
그때 작은아버지와 동업으로 종로허리우드 극장 부근에서 당구장을 하셨다.
당구장 건물 1층에 전기구이 통닭집이 있었다.
늦은 귀갓길에 아빠는 가끔 전기구이 통닭을 사들고 오셨다.
아빠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자식들을 유혹했다.
“아빠 왔다. 통닭 사 왔다.”
전기구이 통닭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마법의 냄새를 풍겼다.
아빠는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동생들까지 모두 흔들어 깨웠다.
기름기가 쏙 빠진 통닭은 6남매에게 최고의 야식이었다.
통닭 두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1970, 80년대 전기구이 통닭은 꽤 고급간식이었다.
어느 정도 사는 집이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
짜장면이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전기구이 통닭은 누군가의 생일이나 성탄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우리집은 형제들이 많은 탓에 먹을 것을 놓고도 늘 전쟁을 치렀다.
“내가 닭 다리 먹을거야.”
통닭 두 마리에 닭 다리는 겨우 4개, 2개가 모자랐다.
서로 닭 다리를 차지하려고 아우성이었다.
닭 다리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아빠는 한 번도 큰애가 막내한테 양보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닭을 한 마리 더 사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닭다리보다는 뻑뻑살을 좋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