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40년 넘게 입었던 군용 깔깔이 외투를 내가 물려받았다.
큰아버지가 대학다닐 때 미군들 초상화를 그려주고 번 돈으로 사주셨다고 했다. 아빠는 큰아버지 대학 등록금을 서울까지 배달했고, 그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외투를 받았다. 아빠의 고등학교 졸업 선물이었다고 했다.
빳빳한 검은색 외피에 까슬까슬한 내피를 끼워 넣은 외투였다.
깔깔이 내피를 떼어내면 춘추복으로 입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내피를 단추에 끼우면 방한복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아빠는 이 군용 깔깔이 외투를 스무 살 때부터 환갑이 넘어서까지 입었다.
검은색 외투는 오랜 세월 햇볕에 바래서 회색빛에 가까웠고,
주머니는 너덜너덜 낡아서 수선집에서 덧방을 해야만 했다.
깔깔이 외투는 거의 40년간 아빠에게 작업복이었고, 외출복이었고,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었다.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이런 외투를 입고 있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특히 드럼통에 구멍을 낸 화덕에서 구워낸 고구마를 팔고 있는 아저씨들에게 깔깔이 외투는 작업복이었다.
나는 이 낡은 깔깔이 외투를 무척 좋아했다.
그 외투에는 모진 풍파를 견뎌온 강인한 생명력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깔깔이 내피는 꺼칠한 아빠의 얼굴이었다.
굳은 살이 깊게 박힌 손바닥과도 닮았다.
쩍쩍 갈라진 손끝 마디마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깔깔이 내피는 엄청 따뜻했다.
거친 얼굴에서 그려내는 아빠의 미소는 따뜻한 깔깔이를 닮았다.
거친 손바닥과 갈라진 손가락 마디마디에서도 온기가 전해졌다.
아빠의 깔깔이 외투는 20대 젊은 시절 나의 보호막이었다.
새벽 신문배달을 할 때도
데모현장에 나갈 때도
깔깔이 외투는 추위와 거친 풍파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