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존재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_『대여금고』

클론인 '나'와 원본인 '나'는 동일인인가?

by 밍밍

5억 년 버튼 논쟁을 아는가? 누르면 1000만 원이 나오는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을 누르면 누른 사람의 정신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5억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끝나는 순간에는 기억이 지워진 채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버튼을 누를 것인가? 버튼을 누르기 전의 나와 버튼을 누르고 기억을 잃은 나는 동일한 '나'인가?

나와 동일한 기억과 세포, 조직, 기관 같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클론은 나와 동일할까?

이러한 질문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대여금고』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대여금고는 인간 스캔, 클론, 기억 등 철학적 요소와 블랙홀 실험 같은 양자역학을 소재로 충격적인 전개를 가진 단편들을 모은 소설이다.


책을 재밌게 읽는 데에 필요한 배경지식

책 속의 한 단편인 <플랑크 다이브> 부분을 위한 배경지식이다. 플랑크 다이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양자역학 지식이 필요할 것 같지만, 우선 내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찾아본 개념을 써보겠다.

1) 파인만 도형

2) 일반상대성 이론

3) 사하로프의 indiuced gravity 이론

4) 중력렌즈 효과

5) 세계선

6) 사건의 지평선


기억에 남은 단편들

<플랑크 다이브>

줄거리: 기젤라는 <카르탕 널> 실험을 통해 우주를 깊은 레벨에서 이해하기 위해 블랙홀로 다이버들을 보내는 계획을 세운다. 이때 <아테네>라는 도시에서 코델리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기젤라의 실험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블랙홀에 돌입하는 다이버들은 그 속에서 죽을 위험이 존재한다. 다이버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클론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 클론이라면.. 죽는 게 두렵지 않을까요?"라는 코델리아의 물음에 기젤라는 "아주 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전혀 두렵지 않을 거예요. 무한대로 계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계속 느끼는 쪽을 택할 거예요. (중략) 하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경우, 우리는 오래된 본능적 반응을 꺼버리고 그냥 그런 운명을 받아들일 거예요."라고 답한다.


의견: 나는 인간의 정체성은 '기억'과 세포, 조직, 기관 같은 '물리적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클론의 탄생 직후에 모든 기억과 물리적 요소가 같다면, 클론과 나는 동일한 존재하고 생각한다. 클론과 원본은 단지 물리적으로 존재해 온 시간이 다를 뿐이지 기억과 물리적 요소가 같으므로 서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도, 우열도 가릴 수 없다. 단지 '원본'이라는 라벨링을 가졌다고 자신이 죽을 위험을 감수할 수 없으니 '클론'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나의 관점에서 둘은 동일한 생물체이므로, '원본'이 '클론'을 사지에 내몰 수 없다.

이러한 나의 관점에서, 앞서 말했던 5억 년 버튼을 누르기 전의 나와 누르고 난 직후의 나는 기억아 같으므로 동일인이다. '기억'과 '물리적 요소'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1000만 원이 생긴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큐티>

줄거리: 남자인 주인공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가지지만, 부인이 아이를 가지는 것을 거절한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존재 '큐티'를 혼자 임신하고 낳아 키운다. 이 세계관에서는 남성이 큐티를 임신하는 것은 특이한 사건이 아니다. 큐티는 인간처럼 웃고, 옹알이를 하고, 꺄르륵거리고, 조잘거리지만 4살에 죽도록 설계되어 있는 생물이다. 큐티는 지능이 정점에 달해도 말을 할 수 없는 정도의 낮은 지능을 가진다. 주인공이 구매한 저렴한 버전의 큐티는 정품과 달리 말문이 트이고 지능이 생겨버린다. 완전히 큐티를 사랑하게 된 주인공은 큐티가 죽는다면, 뒤따를 것이라는 다짐까지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을 하는데 " 만약 에인절(큐티의 이름)이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의 죽음이 지금만큼은 비극적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였을까?"


의견: 우선 주인공이 큐티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기를 보고 귀엽다고 느끼도록 유전자게 각인 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남자 주인공이 큐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찝찝함을 덜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의 '부모가 되고 싶다는 나의 욕구' 때문이었다. 단순히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것을 넘어서서 '4살에 죽는 아이를 남자의 몸으로 임신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데, 여성만 임신이 가능한 지금 사회와 다른 것 에서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한 " 만약 에인절(큐티의 이름)이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의 죽음이 지금만큼은 비극적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였을까?"라는 대사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의견을 말해보겠다. 만약 큐티가 말을 하지 못할 정도의 지능이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을 가지게 된 것은 큐티의 예정에 없는 변수이다. 인간과 프로그래밍된 로봇을 비교하자면, 변수 생기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건이다. 정품 큐티는 유전적으로 완벽히 프로그래밍된 로봇에 가깝기 때문에, 설계대로 낮은 지능을 가지고 그대로 죽는다면 큐티에게 인간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키운 큐티는 변수가 생겨 지능이 높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큐티에게서 인간성을 느끼게 된다. 변수 때문에 큐티의 죽음이 더 이상 로봇의 종료가 아니라 인간의 살해처럼 느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독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 기억과 세포, 조직, 기관 같은 물리적 요소가 동일한 클론은 원본과 동일인일까요? 동일인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유는? 동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고통스럽게 죽는 곳에 클론을 보낼 수 있나요?


2) 5억 년 버튼을 누르기 전과 후의 나는 동일인일까요?


3) <큐티>에서 에인절(큐티의 이름)이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인공이 그녀의 죽을을 지금만큼 비극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