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여행지로 소환되는 착한 기념품
이제 '메이드인차이나'는 그만
여행지에서는 행여 기념품 하나 못 살까 봐 동동 거리며 계산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내가 이걸 왜 샀더라?" 했던 경험이 있는가? 내가 갔던 여행을 기념해줄 것처럼 기대했건만, 이야기가 없는 물건은 단순한 공산품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품이 나의 여행을 기념해 줄 수 없다는 걸, 이제 인정할 때가 된 것이다.
이번 화는 '여행지로 소환되는 착한 기념품'에 관한 제로웨이스트 여행 팁이다.
1/ 기념품은 현지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당장 쓸 수 있는 것으로.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상품들은 뒤집어 보면 대부분 '중국제' 스티커가 붙다. 놀랍게도, 그런 상품은 우리나라 인터넷 쇼핑으로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다.
냉장고에 붙어있거나 책장에 예쁘게 놓여만 있는 흔한 기념품 대신, 사자마자 당장 유용하게 쓸 것을 구해보자. 그 물건을 한국에 와서 사용할 때마다 여행 당시로 소환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꼭 새것일 필요도 없고, 내가 현지에서 만든 것이어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물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 아이슬란드에서 산 양털로 만든 장갑- 손등만 가려줘서 활용도가 높고 따뜻하다. 손가락을 끼지 않으니 벗을 필요가 없어,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나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짝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장갑으로선 최장, 최다 이용률을 기록한다.
이 장갑을 쓸 때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유기농 젖소 목장으로 소환된다. 따스하고 포근한 건초에 누워 쉬던 동물친구들의 나른한 표정이 떠오른다.
> 일본에서 산 우산 - 그냥 흔한 가벼운 우산이지만, 펼 때마다 즐겁다. 일본 여행 중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급히 우산을 사서 쓰고도 비를 흠뻑 맞아 깔깔거리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 유럽의 플리마켓에 가서 산 재즈 LP판들 - 유럽의 플리마켓에 갈 때마다 재즈 LP판을 산다. 단돈 5천 원에 LP 한 장을 살 수 있었다. 베를린의 플리마켓에선 중고 LP를 사기 전에 틀어볼 수 있게 해 줬다. 옆 가게 아저씨가 와인을 들고 놀러 왔다가 재즈를 감상하며 와인을 나누어주었다.
2/ 사진, 일기, 메모, 그림, 나만의 이야기.
여행은 요리와 비슷하다. 내가 선호하는 맛, 질감, 조리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놀랍고도 즐겁다. 내 입맛은 가정에서 학교로 또는 사회로 나올 때, 가치관이 변할 때마다 함께 변했다. 그 과정을 기록하는 건 큰 재산이 된다. 당시의 내가 낯선 상황에 부딪히며 성장하는 기록은 어떤 기념품보다 가치 있다. 평소에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여행 때만큼은 솔직한 기록을 남겨보길 권한다.
요즘 6년 전에 쓴 여행 일기장을 읽으며 정리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며 어느 날은 세세하게, 어느 날은 대충 끄적인 일기를 읽고 있으면 당시 상황과 감정이 생생히 느껴진다. 이 날은 단순히 관광을 다녔구나, 생각을 정리했구나, 현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뭘 느꼈구나, 뭘 더 찾아보고 배웠구나... 다만, 단 몇 살이라도 어린 나의 일기지만 제삼자의 삶처럼 생경하게 보일 때가 있다.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있다.
<사진 좌> 아이슬란드/ 목장에서 산 요구르트, 우유, 목장주인이 양털로 짠 핸드 워머.
<사진 우> 같은 목장의 귀여운 동물들. 모든 동물이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
핸드 워머를 쓸 때마다 저 동물들과 잠시나마 교환했던 눈빛을 떠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