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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l 14. 2022

돈 대신, 별을 세게 해달라고

안녕 까밀로 EP 4/5

Rio tranquilo


일정에 있던 쎄로 까르띠죠의 트래킹은 가볍게 패스했다. 여기 트레킹이 그렇게 예쁘다는데... 여행이 쉬워지고 있다. 트래킹은 파타고니아의 꽃이라는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5일 동안 할 거니까, 여기는 휴게소에서 산을 올려다보는 걸로도 만족한다. 산이 있다고 굳이 다 올라야 할 의무는 없지.


'리오 뜨랑낄로'라는 마을 이름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느린 강'이라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유유자적인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강은 폭이 얼마나 넓은지, 잔잔한 호수 같다. 여러 개 놓인 섬에 오랜 시간 아랫부분이 깎여 동굴이 생겼는데, 파란 물이 하얀 돌섬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푸른빛을 낸다. 사람들은 이곳을 마블 동굴이라 불렀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식료품을 사러 나오면서 마블 동굴 투어 시간을 체크했는데, 마침 자리가 있다며 지금 모인 손님들과 바로 가잔다. 버스를 오래 타 피곤하니 내일 가자고 했더니, 지금 가는 게 좋다고 모두 나에게 한 마디씩 보탰다. 어느새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강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마블 동굴로 가는 보트 ©AbigailSohn

(위는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 istock/AlbertoLoyo



투어는 즐거웠다. 강에서 수영도 할 수 있게 해 줬는데, 역시나 물이 무서운 나는 보트에 남아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이나 맞으며 놀았다.


우리는 숙소로 가지 않고, 강이 바다로 연결되는 다리 위에 앉아서 노래를 틀어 놓고 시간을 보낸다.

까밀로는 또 장시간 통화를, 나는 그림을 그린다.


내가 OneRepublic의 <Counting Stars>라는 팝을 열심히 따라 부르니 까밀로가 가사 뜻을 물어본다.

I feel something so right At doing the wrong thing

I feel something so wrong At doing the right thing

I been prayin' hard, said no more counting dollars, We'll be counting stars


-count stars. 돈 세는 것 대신 별을 세고 싶다는 이야기야. 가사가 너무 좋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작게 동의했다.


집에 돌아와서 쉬다가 사진이나 볼까 하며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까밀로의 방으로 뛰어가서 사실을 알렸다. 까밀로가 내 방을 다시 한번 뒤져보고는 사색이 된 나를 데리고 아까 그 다리로 간다

-늦은 것 같아. 한 시간은 더 지났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답답했다. 파타고니아 사진은 핸드폰에 밖에 없는데...(사진기는 물에 빠뜨려 친구네 집에 짐과 함께 맡겼다)


그런데 다리와 길 사이 작은 풀무더기에 옆으로 얌전히 누워있는 내 핸드폰!!! 우리는 기뻐 날뛰며 안도했다.

까밀로가 웃음을 거두고 정색한다.

- 아비가일, 핸드폰은 주머니 말고 꼭 가방에 넣고 지퍼 꼭 잠가. 가족이랑 연락 안 되고 사진기도 없으면 남은 여행은 어떡할 거야?

- 알았어.


나는 어느새 나를 어린 딸 챙긴 듯하는 까밀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서 흥분한 마음도 가라앉힐 겸 그림을 한 장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자 까밀로가 내 그림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자랑한다.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까밀로와 나는 숙소마다 돌아다니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남은 방이 있는지, 얼마까지 싸게 빌릴 수 있는지 흥정을 했다. 파타고니아의 비싼 숙소 값이 부담스러운 여행자들은 텐트를 치거나, 주인이 더 값을 깎아줄 때까지 빈 방을 기다리며 버텼다.

우리는 저녁을 간단하게 조리해 먹고, 싸구려 와인을 사서 길로 나왔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바람의 세기가 달라진다. 거센 바람을 피해 처마 밑에 모여있는 배낭여행자들과 와인을 나누며 한참을 떠들었다.


 여행 중 만난 남미 친구들은 퍽 순진했다. 그들은 사교육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일을 돕거나, 늦둥이 막내 동생을 돌보거나, 고등학교 때부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린 친구들(혹은 그 형제자매들)이 많았다. 나이를 막론하고, 그들의 인생은 공부와 일로 쪼개진 내 시간보다 더 촘촘하고 복잡하게 짜여 있었다. 그중에 제일 복잡한 인생은 아이 셋을 키우며 일을 하는 스물네 살 까밀로였다. 그가 내 인생이 쉬워 보인다며 웃었다. 그 말에 부러운 한숨이 섞여있었다.

나도 한국에선 깨나 부지런하게 살았지만, 서른이 된 아직까지 부모를 부양하거나 건사해야 할 자식이 없다. 그저 내 몸하나 잘 챙기고 행복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너희 정말 부지런하고, 대단하다고 화답했다. 진심을 담을 말이었다.


우리에게는 셀만큼의 돈이 없었다. 대신 머리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있다. 우리가 돈이 아닌 별을 세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건 그저 노랫말일 뿐일까.






<사진 1>  흥정에 실패한 숙소 중 하나. 우리가 제시한 돈으로는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2> 편의상 버스라고 부르지만, 실은 머리에 짐칸이 있는 12인 승용차다.


<사진 3> 느린 강이라는 뜻의 Rio tranquilo. 눈 쌓인 화산과 느린 강의 얕은 파도, 해변이 아주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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