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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Aug 10. 2022

산에 머물다

파타고니아 트래킹 - 에필로그


한국에 사는 동안 나는 도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동료들과 줄지어 걸어올라 정상을 찍고 후덜 거리며 재빨르게 내려왔다. 하산 후엔 산행시간만큼 긴 뒤풀이를 갔다. 산행은 나에게 큰 피로를 안겼다. 그러던 내가 산과 처음으로 교감한 곳이 바로 파타고니아 트래킹이다


산을 친근하게 느끼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였다. '정상에 오르기'처럼, '산에 머물기'도 산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걸 내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큰 에너지는 들지 않지만, 긴 시간이 소요되는 방식. 산이 내는 소리를 잘 들으려면 최대한 고요하고 길게 머무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공들여 사랑하니, 산은 세상 가장 편안한 존재가 되었다.


1인 산행은 돌이켜보면 위험한 생각인데, 국립공원이다 보니 정해진 트레킹 루트 외에 다른 길은 없어서 꽤 안전한 편이어서 1인 산행자를 많이 마주쳤다. 나는 걸음이 워낙 느리기도 하고, 전망 좋은 곳이 보이면 충분히 감상하고 싶었다. 일찍 가면 캠핑장에 일찍 도착하기밖에 더할까, 어차피 이곳의 해는 길다.


빙산을 바라보며 완만한 산길을 누구보다 느긋하게 걸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처음 본 식물 사진을 찍고, 작은 야생 동물들과 가끔 마주치고, 그리고 만년설을 정말 원 없이 보고 또 보았다.

나의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산을 오르고 내리는 육체적 행동보다 정신적인 무언가였다.



노란 점이 찍힌 곳에 산장, 캠핑장이 있다. 하얀 부분은 만년설이다. (아직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길 바란다, 매년 만년설의 많은 부분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다는 슬픈 뉴스를 보았다.)

만년설의 높은 산봉우리를 피해 지그재그로 걸으면서 전망하는 W 루트와, 3개의 산봉우리 바깥을 크게 도는 O 루트가 있었다. 초보자인 나는 45일의 W 루트를 선택하여, 첫날은 산장, 나머지 3박은 각 캠핑장에서 제공하는 텐트를 예약했다. 텐트 장비와 조리도구를 지고 다니는 것은 내 몸에 무리이기 때문에, 산장이나 설치된 텐트가 조금 비싸긴 해도 다른 옵션은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샤워시설이 포함이라, 매일 따뜻한 샤워를 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더우면 땀범벅으로, 비가 오면 비 땀 눈물 때문에 그대로 자면 자칫 저체온으로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2~4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면 예약한 각 산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 루트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산장(캠핑장)에 도착한 후에 텐트 세팅을 하고, 근처의 높은 봉우리나 전망대에 다녀온 후, 산장에서 자고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나는 오래 머물기가 목표이므로 날씨에 따라 어느 전망대까지 갈지 유동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제 날씨만 도와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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