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 들어가는 길에 까를로스 아저씨를 만났다. 오늘은 좀 더 본격적으로, 집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있었다. 파티에 빠질 수 없는 대형 앰프와 바비큐도 등장했다. 까를로스 아저씨의 딸이 종강을 해서, 친구들과 종강파티를 한단다. 수십 명이 모였다. 천막 가운데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현란한 구 조명에 드라이아이스까지 설치했다. 이들은 정말 노는 데 진심이야. 귀가 터지게 레게똔을 틀어놓고 리듬을 타며 맥주를 마신다. 홍콩의 야외 클럽에 온 것 같았다.
메데진은 -물론 마약으로도 유명하지만-, 일 년 내 봄 같은 날씨와, 미녀의 도시로 불린다. 그만큼 날씬하고 눈코 입이 선명한 조각미녀들이 많다. 이 동네 파티만 봐도 그렇다.
어른들은 집 바로 앞 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아구아디에떼를 마셨다. 12시가 지나자 20대 청년들은 클럽으로 2차를 갔다. 그들이 가고 나서는 이제 어른들 파티다. 음악도 레게똔에서 살사, 람바, 메렝게, 바차타로 바뀌었다. 장르마다 스텝이 약간씩 다른 춤을 춘다. 언리미티드 '쨘'도 계속되었다... 새벽 2시의 거리는 대형 앰프에서 광광 울리는 남미음악이 고요의 판을 깨고 있다.
오늘 모임에서 새로 만난 까를로스의 친구는 예술 대학의 음악 교수란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아저씨가 성악톤으로 노래를 살짝 부르자 까를로스가 그를 저지했다. 기다리라고 한다. 까를로스 부부는 2층에서 두툼한 건반과 건반 다리를 내려가지고 왔다. 새벽 3시. 그들은 건반을 대형 스피커에 연결했다. 교수는 건반을 치며, 오페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낮고 곱고 우렁찬 목소리가... 어두운 거리를 고래고래 채우며 퍼져나갔다. 나는 웃으면서 안절부절 못 하며 땀을 흘렸다. 이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학습된 모범시민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해서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니나와 까를로스는 노래보다 더 큰소리로 앙코르를 외쳤다. 이번에는 그의 건반 연주와 함께, 다 같이 콜롬비아 전통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방금 교수가 부른 창법을 따라 하듯, 복성으로 다 같이!
이 날 밤, 경찰이 5번쯤. 왔었다... 신고를 받았다고 한다. 아저씨들은 경찰이 오면 ‘수고가 많아’ 이러면서 대화를 시작하고, 젊은 경찰은 "파티는 잘 되어가요?" 한다. 언제나 그렇듯 행복한 미소와 함께 무마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경찰들도 사실 이 고성방가가 왜 신고감인지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도 금요일 밤 파티는, 문화고 일상이었으니까.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서 50년을 이렇게 살았어. 1년도 안 된 호스텔이 신고라니. 이건 '우리 문화'야.”
설명하다가 더 분이 올랐는지, 아저씨는 볼륨을 더 올렸다.
도저히 잠 못 이룬 호스텔의 투숙객 몇 명이 길거리로 나왔다. 도대체 누가 새벽 4시가 지나도록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켜댄단 말인가. 나는 그중에 호스텔의 운영자를 알아봤다.
잠깐 나온 호스텔 주인이 아저씨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약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저기 앉은 동양인을 호스텔에서 본 것 같은데, 하는 눈빛. 나서기 좋아하는 내가 오라고 손짓을 하고 면담을 주선해줬다.
이제 그들은 술잔을 기대며 서로의 입장을 듣는다. 호스텔 주인은 영국인이지만, 콜롬비아에 오래 살아서 이 꺼지지 않(다 못해 폭죽이 밤새 터지)는 금요일 밤의 파티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스쳐가는 여행객들의 컴플레인이 있지만, 뭐 어쩌랴, 객이 주를 바꿀 수는 없으니.
까를로스가 말했다. “아비가일, 이 호스텔이 문 연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해보는 건 처음이야.” 토니가 보탰다 “너는 어떻게 3주도 안 돼서 이게 가능하니? 장기투숙객도 많았지만 너처럼 동네에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보질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