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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n 29. 2022

권하지 않는 여행 EP 1 / 3

마약에 취한 여행자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지어낸 것입니다

**해외에서 아무나 따라가면 정말 위험합니다.

*** 마약은 해외에서 해도 불법입니다. 적발되면 국내에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Sunday, December 20, 2015

남미 콜롬비아. 이 나라 이름을 들으면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커피, 혹은 마약 카르텔.


지난 한 달간 겪은 바, 콜롬비아는 내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다. 늘 다정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여유로운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방심한 틈으로, 어두운 콜롬비아가 훅 들어왔다.


콜롬비아 북부의 팔로미노 palomino는 술집이 몇 개 없는 작은 마을이다. 모든 여행객들이 그 몇 없는 술집으로 모여서 놀다가, 자정이 되자 일순 거리로 쫓겨난다.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메데진과 달리, 팔로미노는 마감시간이 철저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흥겨움으로 떠들썩한 거리에서, 한 남자가 모든 사람들을 제 집으로 초대했다. 경찰이 술집마다 순찰을 돌며 모두 나갔는지 재확인하는 사이, 여행객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낮에 트레킹에, 튜빙에, 수영까지 하고 밤에 클럽에서 춤도 췄는데 어딜 또 간다는 말이야? 난 이제 해먹에 가서 자고 싶어!]


이제 지친 나와 달리, 일행인 마리아는 이미 흥이 오를 대로 올랐다. 오스카는 항상 나보다는 마리아 편이었다. 오스카까지 잠깐만 있다 가자고 설득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다. 우리는 전날에도 숙소를 따로 예약하지 않고 해변가 오두막에 설치된 해먹에서 잤다. 혼자 해먹으로 가는 것보다 이들과 끝까지 같이 있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되었다. 


초대받은 집은 넓고 깨끗했지만, 단수 상태여서, 끈적끈적한 몸을 대충이라도 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깔끔히 접어야 했다. 얼핏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실에 모여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내가 섞이지 못하고 작은 방 소파에서 강아지들과 놀고 있는 걸 집주인이 보더니, 피곤하면 침대에서 쉬라고 한다. 그가 에어컨이 켜진 조용하고 시원한 방을 내줬다.


벽 너머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술에 취해 제각각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넓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푹 꺼진 매트리스와 더러운 시트를 몸에 대고 있으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격자무늬만 눈으로 따라 그렸다. 오후부터 땀띠인지 바이러스인지 모를 반점이 팔다리에 일어났는데, 밤이 되자 슬슬 그것들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해먹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자고 싶지만 혼자 거기까지 걸어갈 용기는 없고... 사람들이 틈틈이 "꼬레아나(한국애)" 어디 갔냐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방문을 열어 보고, 내 머리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갔다. 모기에게 뜯겨 볼품없어진 내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빨리 나으라고 뽀뽀해주는 애도 있었다. 너희들의 지나친 관심이 내가 숨어있는 주된 이유니 관심을 좀 접어주겠니.


1시쯤, 마리아, 오스카와 집주인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곤 모퉁이에 있는 서랍장에 둘러서서 부스럭거리더니 빨대를 코에 꽂고 힉-힉- 들이마시는 게 아닌가. 이 집에 오고부터 마리와나를 종이에 말아 피우는 건 봤지만 저건 설마 코카인...? 나는 잠 든 척했다.


잠시 후, 다음 그룹이 와서 또 코카인을 들이마시고 나갔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다.

[아비가일, 휴가 중에 이렇게 일찍 잠을 자다니!]

[놀자, 나와 나와!]

지금 나가면 정글임을 직시한 나는 얌전히 방에 숨어 있었다.


코카인이 궁금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이날까지 내 대답은 No. 그리고 이 날이후로는 네버 Never.


3시쯤 되니 마리아가 반쯤 풀린 눈으로 헤헤 웃으면서 들어왔다. 그리고 집주인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또 나에게 인사를 하려나 했는데, 내 옆으로 나란히 누웠다. 응? 나는 귀찮고 너무 피곤해서 둘이 키스를 나누는 것 까진 모른 척 참아냈다. 이 녀석들 발정 난 동물이 되었구먼, 그들이 자세를 바꾸자 나는 고장난 스프링처럼 벌떡 튀어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나와서 보니, 이제 집에는 별로 남은 사람이 없고, 음악도 없었다. 옆방에 해먹이 있길래 여기 숨기로 한다. 몸을 뉘이고 둥둥 떠 있으니 좀 추운 것 같아, 이불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려고 오스카를 크게 불렀다. 오스카아~~


곧 오스카가 침대방에서 [야아!] 빽 성난 소리를 질렀다. 오스카는 누워있는 게 내가 아니라 마리아인 걸 알아채자, '아,미안! 헤헤헤' 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내가 해먹에 있는 줄 모르고 침대방으로 갔다가, 집주인이 나를 덮친 줄 알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오스카가 어디선가 더럽고 축축한 이불을 가져와서 지극정성으로 덮어주며 말했다.

[아비가일, 다 괜찮지? 미안해. 지금 다들 미쳐있어. 그렇지만 나는 멀쩡해. 여기서 아침까지 자고 버스로 산타마리아로 가면 돼. 괜찮지?]

[응,] 오스카와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고 해먹에서 잠이 들었다.


곤히 잘 자고 있는데 새벽 5시쯤, 오스카가 해먹을 흔들었다.

[아비가일, 일어나, 해변 오두막으로 가야 해]




<... EP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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