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수영 수업을 마친 아이가 돌아왔다.
“수영은 잘했어?”
어두운 표정의 아이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외면하는 아이를 끈덕지게 끌어안았다. 포옹의 힘일까. 잠겨있던 자물쇠가 스르륵 열렸다.
“다른 아이들은 잠수도 잘하고 헤엄도 잘 치는데 나만 못해. 몸이 뜨지도 않고 자꾸 가라앉아.”
아이의 풀 죽은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잘 쓰려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
붙이고 더할수록 어색하고 모호한 문장이 되었던 순간들. 수영을 비롯한 어떤 운동이든 무슨 활동이든 의욕이 과하면 효과는 반비례했다. 적당한 의욕과 넘치지 않는 힘의 균형이 필요했다.
스티븐킹이 말했다. 힘이 들어간 글은 조사, 부사, 수식어를 주렁주렁 걸친 거추장스러운 글이 된다고. 조사로 덮인 길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지 않았던가.
적당히 힘을 빼야 한다. 단순하게, 알기 쉽게, 경쾌하게.
정제되지 않은 통밀 같은 언어들이 튀어나왔다. 근본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둥둥 떠다녔다. 무질서한 언어들을 정렬시켜 가지런히 눕히고 싶었다.
입에서 흐르는 대로 담기에 종이는 망망대해다. 하얀 바다 위에 제대로 펼치고 풀어놓고 싶었다. 나를 간지럽히는 언어를 파헤치고 싶었다.
답답함을 안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해답을 찾으려는 듯 책숲을 거닐었다.
부산한 발걸음 끝에 은유작가 책을 발견했다. ‘쓰기의 말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글쓰기 교본으로 손꼽히는, 탄탄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 보물지도라도 찾은 듯 탄성을 질렀다.
글쓰기에 대한 막막함과 목적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저자의 경험담까지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페이지마다 세계 작가들의 명언도 수록되어 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위해 지새우던 밤들은 글쓰기 지도(地圖)가 된다.
글쓰기라는 망망대해에서 마주친 귀인이다. 그를 붙들고 쏟아지는 언어를 조심조심 담는다. 듬성듬성한 바구니가 정갈한 단어로 소복하게 잠길 때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기를. 조금씩 뜨겁고 간절한 바람이 피어오른다.
작가가 말한 '생존의 글쓰기'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소멸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는 릴케의 간절함도. 세상이 꽉 막힌 벽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의 욕심과 추악함에 넌덜머리 나던 날, 뜯긴 마음을 달랠 곳이 절실했다.
덩그러니 남겨진 날 일으킨 건 독서와 글쓰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살린 언어도 나를 내던진 인간이 낳은 언어라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상처받고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해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이다.
쓰지 않으면 쓰고 싶어 안달 난다. 쓰려고 해도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날도 수두룩하다. 그런 마음을 꿰뚫은 듯 저자가 말한다.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따사로운 조언에 무턱대고 펜을 쥔다. 나의 문체는 아메바처럼 형체가 불명확하고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미지다. 스티븐 킹의 광기를 뿜었다가 최은영의 단아함을 품었다가 편성준표 유머를 흉내내기도 한다.
지상낙원을 좇는 철없는 모험가가 되어보기로 본다. 겉핥기식이었던 삶을 다시 써 내려간다.
어제도 쓰고 오늘도 썼으니 내일도 쓸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