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龍山
'닭의 벼슬과 용의 몸을 닮은 산'
산행지 : 계룡산 (충남 공주)
산행일 : 2024.09.28(토요일)
산행코스 : 갑사-연천봉-관음봉(766m)-삼불봉-갑사(대략 10Km 6시간 소요)
난이도 : 조금 어려움
이제는 지식백과에나 나올 법한 고등학교 교련시간.
선생님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던 교련 선생님의 주도하에 전 학년이 계룡산 갔었다. 학생들은 모두 교련수업을 가장한 소풍을 기대하며 설레어했지만, 실상은 소풍의 탈을 쓴 혹독한 교련 훈련 시간이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던 시절'이라는 레전드 짤이 넘쳐나는 80년대답게 동학사에 학생들을 내려놓고 조별로 정상을 넘어 갑사로 가야 마칠 수 있는 정신 나간 일정이었다.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는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모두 완등을 했었다. 그때는 욕을 하며 산을 넘어갔지만 오르면서 펼쳐지는 비경에 마음 한편 산을 좋아는 마음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후 계룡산은 가까운 산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되면 자주 찾았다. 특히 지난겨울 정말 오랜만에 폭설이 내리는 계룡산을 올랐을 때, 이전보다 정비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변화된 모습에 감탄했었다.
처음 계룡산을 오른 기억 때문인지 늘 동학사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익숙했다. 오랜만에 계룡산 산행을 계획하며 지금까지 잘 가지 않았던 갑사코스로 오르고 싶어졌다. 동학사보다 2-30분을 더 가야 하는 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잘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해 보고 싶었다.
갑사코스는 보통 가을(10월 중·하순)에 오면 정말 단풍이 예쁘다고 한다. '춘마곡 추갑사'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가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는 뜻인데, 아직 단풍은 없었지만 단풍이 물든다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기대되는 진입로였다. '접근성만 좋았어도 갑사로 자주 왔었을 텐데' 생각했다.
갑사를 지나 갈림길이 나왔다. 금잔디고개로 오르는 길은 용문폭포를 거처 삼불봉으로 가는데 대체로 완만한 구간이 많은 반면, 연천봉으로 가는 코스는 가파른 구간이 많고 험하다. 하지만 연천봉에서 보는 계룡산의 풍경이 좋다고 하니 먼저 보고 싶기도 했고, 가파르게 올랐다가 완만한 길로 하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연천봉을 올라 금잔디고개로 하산하기로 했다.
연천봉으로 가는 구간은 예상대로 험하고 가팔랐다. 다만 계룡산의 북면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그늘진 구간이 많았고 가파른 돌길 옆으로 복개천이 있어 한 여름 비 온 후 오른다면 꽤 시원할 것 같았다.
능선까지 오르면 정상인 관음봉과 연천봉을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연천봉을 올랐다가 관음봉으로 가기로 했다. 살짝 돌아가는 길이지만 연천봉에서 보는 계룡산 풍경이 멋지다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연천봉에 오르니 계룡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봉우리의 능선이 보는 방향에 따라 용의 모습으로도 보이고 닭의 볏 모양으로도 보인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붙여졌다고 하는데, 연천봉에서 계룡산의 전경을 보니 산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용의 등줄기 같기도 하고 닭의 볏 모양 같기도 한 섬세하게 굽이치는 산 능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등학교 교련 수업으로 이 산을 처음 왔을 때 동학사에서 관음봉에 올랐다가 연천봉 아래에 있는 갈림길에서 갑사로 바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친구들과 얘기하다 걷다 보니 이정표를 제대로 못 보고 연천봉을 올랐었다. 등산이라고 해봤자 등산로가 필요 없는 동네 뒷산 정도 오른 게 전부였던 소년들에게 계룡산은 경험해보지 못한 큰 산이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등산지도 하나 없이 연천봉까지 올랐던 소년들은 직진본능으로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내려가면 다 만나는 거 아냐?' 하며 내려갔었다.
그렇다. 길을 잃고 헤매었다는 학생들이 바로 내가 속한 조였다.
그러다 우리 외에 학교 학생들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잘못됐음을 느꼈던 우리들은 지나가던 다른 등산객에게 길을 물었다.
"아저씨! 여기로 내려가면 갑사인가요?"
"어? 여기로 내려가면 갑사 반대편인데? 길을 잘못 들었네. 갑사는 저쪽인데..."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은 뒤쪽이었다.
"왔던 길 돌아갔다가 갈림길 나오면 거기서 내려가라"
"... 네"
등산로를 따라 다시 산에 오르기 귀찮았던 소년들은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산사면을 따라 갑사방향으로 그냥 내려가기였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그냥 가면 되지 뭐'하며 내려갔는데 넘어지고 잔가지에 쓸리며 험난해지는 산속에서 점점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그렇게 길을 헤쳐갔던 소년들은 천만다행으로 등산로를 만나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잘못됐으면 신문기사 1면을 장식할 수도 있었겠지만 집결지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으로 끝날수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 큰 잘못인 줄 알고 선생님에게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만 연거푸 했던 소년들이 아른거린다.
연천봉에서 서서 계룡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아찔하고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연천봉에서 내려와 능선길을 따라 관음봉으로 이동했다. 계룡산은 주봉인 천황봉,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져 있는데 정상인 천황봉은 통신시설이 있고 3군 본부가 모인 계룡대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민간이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관음봉을 계룡산의 정상으로 본다.
관음봉에서 정상인증을 마치고 삼불봉으로 향했다.
계룡산에 오를 때마다 이 구간의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관음봉에서 삼불봉까지 거칠고 투박하게 이어지는 암릉과 산세는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늘에 닿을 듯 위엄 있게 솟아오른 세 개의 암봉이 멀리서 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삼불봉. 계룡산을 와서 이 풍경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고 행복하다.
관음봉에서 삼불봉까지 가는 바위 능선길은 스릴 넘치는 구간이 많았다. 동학사 방향으로 깎아지는 벼랑이 이어지고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구간이 많다. 물론 국립공원답게 안전시설이 잘 되어있고 살짝 우회해서 가는 길도 있지만 조금 위험하더라도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이 더 끌렸다.
삼불봉에 오르니 천황봉과 관음봉을 위시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삼불봉에서 보는 계룡산 전경도 산세의 기백이 느껴져 꽤 멋지다.
삼불봉에서 가파른 하산길을 내려 남매탑과 금잔디고개 갈림길에 도착했다. 잠깐 남매탑을 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가니 아껴야지.'
스스로를 다잡으며 갑사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금잔디고개 주변으로 꽤 가파른 구간이 이어지지만 비교적 짧은 구간이었고, 그 후로는 완만한 길이 많아 갑사까지 무난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계룡산은 가장 많이 오른 산이다. 그만큼 이 산에 관련된 추억도 많은 산이다. 정말 많이 다녀본 산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간다 해도 좋았던 것 같다. 주 능선까지 오르는 구간이 꽤 가팔라서 오르는 게 쉽지 않지만, 어려움을 딛고 정상에 오르면 펼쳐지는 풍경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