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 언어, 기억에 관한 조용한 생각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젊은 날엔 세상이 눈부셔 도무지 온전한 색을 담을 겨를이 없다. 나이가 들면, 도리어 그 눈부심을 이겨낸 뒤 남은 것들을 곱씹는다. 기억 속의 노란 바나나는 더 이상 과일 그 자체가 아니라, 어린 날 엄마 손에 쥐어지던 정오의 햇살, 시장 골목의 바스락거림, 혹은 묘하게 따스했던 학교 급식의 한 조각일 수 있다.
언어는 이런 감각의 그림자에서 피어난다. 처음엔 단순히 ‘노란색’이라 불렀지만, 곧 그 노랑은 ‘바나나의 색’, ‘기억의 색’, ‘익숙함의 색’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다. 뇌의 한켠, 시각과 언어의 길목 어딘가에서 우리는 그것을 ‘의미’로 저장한다.
최근의 한 연구는 우리가 기억하는 바나나의 색조차 시각과 언어가 손을 맞잡고 있어야만 온전히 보관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각 피질이 물체의 색을 인식할 때, 언어 영역은 그것을 다정하게 이름 붙이고, 그 이름은 다시 기억의 그릇을 만든다. 반대로, 이 연결이 끊기면 감각은 흘러가고 기억은 구멍이 난다. 마치 잘 익은 바나나를 보았지만, 그것이 노란색인지 초록색인지 판단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본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보는 것만이 아니다. 언어는 우리가 본 것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있어야 감각은 흘러가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이름과 함께 보존된다. 그러니 언어는 단지 말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기억을 쌓고, 감각을 이해하고, 세상을 떠올리는 방식 그 자체다.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은 단순히 늙어가는 존재가 아니다. 언어와 감각을 통해 세상을 다시 짓고, 기억을 빚고, 다시금 삶을 이해하는 존재다. 바나나의 노랑이 그저 색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언어를 통해 다시 살아난 감각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출처: “Color Knowledge Tied to Language-Visual Brain Circuitry” – Neuroscience News, PLOS Biology (연구진: Liu Bo 외, 베이징 사범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