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가 기억을 저장하고, 바꾸고, 다시 꺼내는 방법에 대하여
살면서 문득 떠오르는 어떤 기억이 있다. 오래전 친구의 얼굴,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노래, 혹은 한밤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말 한마디. 그런 기억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어느 바람결에 다시 찾아오는 걸까?
과학자들은 그 오랜 수수께끼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인그램(engram)’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마치 책갈피처럼, 뇌 속 어딘가에서 기억의 위치를 가리키는 신경 세포 집합체다. 놀랍게도 이 인그램은 뇌의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기억은 단단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마치 퍼즐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진 조각으로 남아 있다.
최근의 연구는 이제 그 조각들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유전자 태깅이나 광유전학 같은 기술 덕분이다. 연구자들은 특정 기억이 깃든 신경 세포를 ‘불빛처럼’ 켜서, 그 활동을 관찰하고 조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기억이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쓰이고 편집되는 살아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학습이 일어날 때 모든 세포가 동등하게 참여하지는 않는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리드 바이올린처럼, 더 활발히 깨어 있는 세포들이 앞장서서 기억의 선율을 연주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CREB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이 활발할수록, 그 세포는 ‘기억을 품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도 기억은 그대로일까? 아니다. 기억은 해마라는 뇌의 한 영역에 먼저 저장된 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영역 예컨대 "전두 피질"로 ‘이사’를 간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구체적인 장면을 잃고, 이야기의 뼈대만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기억은 흐릿하게 남지만, 그 감정이나 교훈만은 오래도록 품고 있게 된다.
이런 기억의 일반화는 때로 우리를 돕지만, 반대로 해를 끼치기도 한다. PTSD나 불안 장애는 바로 이 기억 일반화가 너무 과도하게 일어날 때 생긴다. 뇌는 위협이 없는 순간에도 과거의 공포를 되살려, 현실을 왜곡한다. 기억의 맥락이 무너졌을 때, 삶은 더 이상 온전한 현재로 남지 못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뇌는 기억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 그것은 일시적으로 ‘유연한 상태’가 된다. 이때 우리는 그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거나, 감정을 다시 쓸 수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다른 감정으로 감쌀 수 있다면 조금 덜 아프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과학은 ‘기억을 지우는 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에게 묻는다.
기억이 나를 만든다면, 나는 그 기억을 어떻게 다시 써나가야 할까.
출처:
Chen, Z.Y., Teng, S.W. 외. How the Brain Stores and Edits Memories, The Journal of Neuroscience News,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