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날

by 마리엘 로즈

[말,말,말, 아무말 대잔치]


오늘은 그런 날이다.


별일 없는데 마음은 바쁘고,
할 일은 많은데 손은 느리고,
말을 꺼내면
어딘가 이상한 데서 튀어나오는 날.

그래서 그냥, 딴청 부리기로 했다.
진지한 얘긴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말장난이나 하며 하루를 보내보기로.




식탁 위에 감자가 하나 있다.
누가 올려뒀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거기 있는 게 나보다 안정적이다.



가끔은 창문을 열고 싶다.
공기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누가 지나가다 날 데려갔으면 좋겠어서.



오늘은 이불이 나보다 나를 더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이불 편을 들기로 했다.



텀블러에 얼음을 넣었는데,
얼음이 먼저 녹아버렸다.
나보다 빨리 지쳐버린 느낌이랄까.



커피는 진한데 마음은 연하고,
하루는 길었는데 기억은 짧다.
도대체 뭘 한 거지, 오늘?



핸드폰을 열었다가,
뭐 보려고 했는지 까먹고
다시 잠금.
이것도 일이다.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하는데,
그 중 반은 남자 친구한테 하는 거다.
근데 나는 남자 친구가 없다.



요즘 기분이 뭐랄까,
따뜻한 물에 젖은 양말 같다.
그냥 아무 데도 가기 싫어지는 기분.



바람이 분다.
분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같이 움직이진 않더라.



딱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이런 날도 있다는 걸,
말로라도 건드려보고 싶은 그런 날.

이렇게 헛소리 같은 말들이
가끔은 나를 더 잘 설명해주니까.

오늘은 그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날.
그래도 뭐,
그래서 웃음 한 번 났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기는 일기장에

헛소리는 품격있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꿈은 고양이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