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메우려는 ‘우물’을 보지 말고, 눈이 녹아내리는 ‘물’을 보라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우물가로 갔다. 간밤에 눈이 내려 무릎이 빠질 정도로 수북이 쌓였다.
“아들아,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구나. 저 눈을 져다 우물을 메우도록 해라.”
아버지는 등에 지고 있던 지게를 벗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아들은 한 짐 두 짐 눈을 지고 와 우물에 부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부어도 우물은 메워지지 않았다. 우물 속으로 들어간 눈은 우물에 닿자마자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 우물을 메우려면 흙을 져다 부어야 합니다. 눈을 져다 부으면 우물은 메워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눈을 져다 부으라고 말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다음날에도 눈을 져다가 부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건 정말 무모한 일이야, 아무리 아버지 말씀이라도 우물에 눈을 져다 부을 수는 없어”
아들은 아버지 말을 거역하고 지게를 내팽개쳤다.
우물에 아무리 눈을 부어도 우물은 메워지지 않는다. 우물을 메우려면 흙을 쏟아부어야 한다. 물과 흙은 겉모양이 다르고 성질도 다르다. 그래서 메워질 수 있다. 하지만, 물과 눈은 겉모양이 다르지만, 성질은 같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물로 물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도에 있어서 먹다 남은 밥 찌꺼기 같은 군더더기 행위이다(其在道也 餘食贅行).” (<노자> 제24장)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달랐다. 드러난 현상 너머 본질을 봐라. 눈으로 메우려는 ‘우물’을 보지 말고, 눈이 녹아내리는 우물 안의 ‘물’을 보라.
AI 파고가 거칠 듯 넘실넘실 다가온다. 기술의 르네상스라 할만하다. 무릇 모든 기술은 내재된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쓰는 것은 인간의 몫. 그 단순한 등자(鐙子, 말을 탈 때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든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가 군사용으로 사용되기까지 무려 800년이나 걸렸다.
지게를 내팽개친 아들의 행동도 맞지만 조금 더 본질을 보려고 노력했다면 문자 너머, 말 너머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뜻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는 깨달은 자의 안타까움이다. AI를 써 본 자는 안타까움으로 날마다 “우물을 메워”하고 소리치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눈으로는 안 돼”하는 하소연뿐이다.
*동영상 https://youtu.be/Z2FSO1Z2uSY 은 강민구 상록수회장의 <Gen. AI 시대의 생존 자세와 전략> 특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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