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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덖으러 가입시더?

세계 10대 슈퍼푸드 녹차 만들기 체험

by 삼선 윤일원

연둣빛 물결이 바다처럼 밀려올 때, 제니시스는 양재 시민의 숲을 지나 운수리 화개골 삼신마을을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우리나라에는 3대 미스터리가 있다.


날이면 날마다 삶이 어렵다고 찡얼거리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연휴마다 인천공항은 미어터지고, 입만 열면 저출산으로 나라 망할 것이라 했는데 입소문이 난 전국 곳곳은 언제나 미어터지며, 아랫사람 쥐어짠다고 소문이 난 창원법원장 강민구 판사님이 쥐어짠 것은 부하직원이 아니라 거덜 난 최신 핸드폰이라는 것이다.


여행이란 떠날 때 딴 마음이었다가 돌아올 때 한 마음이 되기도 하고, 떠날 때 한 마음이었다가 돌아올 때 딴 마음이 되기도 한다.



차(茶) 덖으러 가입시더?


해마다 성지처럼 찾아가는 지리산 화개동천(花開洞天), 불과 한 달 전 구례 화엄사 홍매화 보러 연암당(燕巖黨)과 함께 들렸던 쌍계사와 칠불사, 의신마을 또 간다고? 언빌러버블! 뚱한 표정의 아내는 또 말이 없다.


그럼에도 “옳거니, 옛설” 하는 이 마음에는 디지털상록수AI협회(이하 상록수) 회장님과 오랜 만남도 있었지만, 첫 1박 여행이며 또 익숙한 공간이라 지루할 듯도 하지만 사람이 바뀌면 낯선 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에 천석고황인 내가 어찌 마다하리오?


서초구 양재에서 출발한 제니시스가 지리산 삼신골에 10:20에 도착하니 “혹시나 했는데 알고 보니 역시나”가 아닌 진짜 황진이(黃眞伊) 여사께서 우전 생잎 녹차 4 바구니를 담아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 제다(製茶)에 앞서 안쪽 너른 다실에서 멀리 산청에서 오신 허재택원장님, 광양에서 오신 황규원 가남 매실농원 대표님과 함께 우전차로 입을 가볍게 달구고 노각차로 원기 충전한 후에 황진이 대표께서 가마솥이 2개씩 3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와 온도를 350도까지 높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두꺼운 목장갑 두 개를 끼고 토시를 팔목까지 걷어 올린 다음 가마솥의 온도가 350도가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첫 번째 생잎 녹차를 쏟아부었다.



황진이 대표가 시범을 보인 후 상록수 회장의 설명이 있은 다음 곧바로 가마솥에 손을 집어넣어 녹차를 덖기 시작했다.


“생잎이 타지 않게, 진 무르지 않게 골고루, 살살~~”


어떤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듯이 흩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닭이 모이 찾듯 헤치고, 어떤 사람은 까뒤집듯이 위로 살살 뒤집고, 또 어떤 사람은 한 뭉텅이로 왕창 뒤집기도 한다.


화류계의 전설 황진이 대표가 이 모양새를 보고 어찌 가만있을쏜가?



“이 손놀림을 보면 아내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 한마디에 순간 스냅을 하지 않으면 손이 델 정도의 뜨거운 열기가 두 겹의 장갑을 뚫고 올라오는 와중에도 밀려드는 구부정한 허리의 통증을 한 방에 날리기에 족했다.


“어젯밤 자고 간 그놈, 아마도 평생 못 잊을 거야. 기왓장이 아들이었나 마치 진흙을 반죽하듯이, 뱃사공의 손재주였나 마치 노 젓듯 하듯이, 두더지의 아들이었나 마치 곳곳을 파헤치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마음이 야릇해지더라. 그간 나도 겪을 만큼 겪었으나 맹세 허간데 어젯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 거야”


황진이의 말이라고? 천만에 영조시대 대제학을 지닌 이정보(李鼎輔)의 사설시조다.


대제학 벼슬이 누구인가? 비록 정2품이지만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낫다”라고 할 정도로 조선의 문장의 저울질하는 사람 ‘그가 아니라 하면 아니고 맞는다면 맞는 시대의 글’이니 이 또한 참이다.



가마솥에서 녹차의 생잎이 터지면서 ‘타닥타닥’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연둣빛이 살짝 검은빛을 띨 무렵 황진이 대표가 찻잎을 꺼내서 말리라 한다. 선풍기 앞에서 쭉정이 나락을 걸러내듯이 머리 위에서 떨어뜨리면서 열기를 식힌다.


그런 후에야 다음 단계인 ‘비비기’로 들어간다. 빨래 빨 듯이 빡빡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홍두깨로 칼국수 만들듯이 두 손으로 찻잎을 몰고 와 손바닥으로 반죽 밀 듯이 밀어야 한다. 그러면 살짝 익혀진 연한 찻잎에 상처가 나 물이 잘 스며들게 하며 눈에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찻잎 가시가 제거된다.


우리는 가마솥 온도를 점점 낮추어 이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하고, 평생 공직자 생활 ‘비비기’를 못한 죄로 ‘비비기’를 잠시 기계에 의존한다.


이 단계가 끝나면 ‘마르기’ 단계로 넘어간다. 이렇게 상처 난 찻잎은 공기 중 산소와 접촉하면 순간에 발효가 되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떡처럼 뭉쳐져 있던 찻잎을 하나하나 분리하여 서늘한 그늘에 건조한다.


우리 일행은 아침도 없이 강행군으로 서울서 화개로 내려왔기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12:00 '땡' 하니 화개천을 건너 근처 소고기 수육 집에서 가서 회장님이 그저께 명강의로 두둑하게 받은 보너스와 선물로 받은 현지 300불이 훌쩍 넘는 미국 나파밸리산 와인을 꺼내 놓는다.



이렇게 커피와 정금 차밭에서 인생샷을 한 다음 마지막 덖기를 위하여 다시 가마솥으로 향한다.


이제는 중간에 휴식도 없이 80도의 가마솥에서 찻잎에서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들리고 검은빛이 회색빛으로 변할 무렵까지 쉴 새 없이 달군다. 이 과정에서는 찻잎의 가시가 가루가 되어 옷과 머리를 노랗게 물들게 한다.


무릇, 무엇이 무엇으로 완전히 변신할 때 화학적 전이가 발생한다. 녹차 생잎을 가만히 두면 가을이 되어 낙엽으로 거름이 되지만, 녹차 생잎을 따다가 9번 덖고 비비고 마르기를 반복하면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변신한다.


멀리 산청에서 오신 허원장님 사모님 왈 “난 녹차를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올 때 만든 녹차, 녹차 좋아하시는 회장님 전부 드리고 와”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큰소리친다.


*내일, 제2부, “칠불사 아자방, 인연이 어쩌면 그렇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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