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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Oct 08. 2024

비우는 중입니다

한숨은 주로에서

선반의 먼지에 시선이 닿았다. 시선은 흐트러진 각종 커피와 티백에 꽂혀 결국 내 발목을 붙든다.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나설 참이었지만, 몇 날 며칠 답답한 마음은 결국 선반에서 터지고 말았다.

선반의 물건들을 죄다 테이블로 옮기고 먼지를 닦고, 쓸데없이 쌓아 모은 물건들을 하나 둘 쓰레기봉투에 구겨 넣는다. 깊은 한숨도 함께 밀어 넣는다.

고작 선반 하나지만 용도에 맞게 정리를 하다 보면 다른 구역에 까지 손이 뻗고 그러다 보면 족히 두어 시간은 잡아먹는 정리의 시간.

정리는 답답할 때 습관처럼 나오는 내 오랜 버릇 하나다.

세상 무난하게 사는 인간인지라 집구석도 날 닮아 적재적소에 물건들이 쌓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동선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구겨져 있다가도 식구 중 하나가 물으면 기가 막히게 위치를 설명해 낸다. 가령 약통 뒤에 숨어있는 가위 따위를 말이다.

그러다 종종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죄다 끄집어내어 소중히 간직해 온 물건들을 내다 버린다.

할머니 때부터 뒷마당을 지켜오던 장 항아리가 그랬고, 아빠의 일기장이 그랬고, 학창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그랬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을 지나올 때마다 버리면 그 힘든 감정들이 잊히기라도 하듯이 몽땅 비워냈다.


나의 달리기는 때로 비우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토해내고 싶어 늦은 밤, 혹은 잠이 들지 않는 이른 새벽 홀

로 밖으로 뛰쳐나간다.

텅 빈 길 위에서 무겁게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은 어느새 7분대에서 5분대까지 페이스가 앞당겨있다.

얕게 쉬던 숨은 점점 거칠어지고 뼛속 저 깊은 곳의 쾌쾌 묵은 먼지까지 끌어올려 토해내고 있다. 싸늘했던 가을바람에 날을 세웠던 털은 송골송골 땀에 샤워를 하고, 땀 같은 콧물이 먼저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가슴도 벅차오른다.

슬픔을 보내는 나만의 방식이 달리기다.

답답한 일이 풀리지 않고 가슴을 짓누를 때 나는 한숨 대신 주로에서 호흡한다.

지나는 차 소리를 구령 삼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함께 호흡하며 달린다.

보통 달릴 때 시선은 정면에서 15도 정도 아래를 응시하며 달리는 것이 안정적이지만, 이런 날은 일부러 정면을 주시하기도 한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화 따위의 감정들이 얼씬도 못하게 말이다. 

마지막 바퀴는 내가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내달린다.

한숨이 가장 아름답게 나오는 순간이다.

최대 심박수 177을 넘어 180ppm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을까.

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 삶은 나와 조우하는 것이다.

내 안의 어린 나를  위로하고, 내 안의 나약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어제보다 나은 나를 추켜세우며

나는 달린다.

한숨은 주로에 비워내고 어제보다 단단한 나로 씩씩하게 오늘을 달린다.

내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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