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자야, 오빠 오려면 조금 걸려.. 지금부터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오빠는 어디로 갔는지 이번 주말엔 언니랑 둘이 있는 시간이 많네. 자꾸 어딜 그렇게 나가는 거야. 인사도 잘 안 하고 나가는 것이 나 조금 섭섭하려고 해. 언니랑 둘이 있는 건 아무래도 편하지가 않단 말이지. 그래도 뭐, 요즘엔 쉬고 있을 때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 현관을 노려보고 있으면 오빠가 오겠지.
조용하던 차에 언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어. 나에게 뭔가를 주려는 건가? 앗, 저 하얗고 말캉한 물체는 리코타 치즈! 맛있는 건 못 참는데 치즈는 더 못 참지. 빨리 줘 빨리 줘..!! 언니는 내 몫을 떼어서 여러 번에 나눠 주더니 제일 큰 뭉터기를 자기 입으로 넣었어. 나는 요만~큼 자기는 이마아아안~~~ 큼. 나 조금 화나려고 해.
입에 묻은 것까지 야무지게 핥아먹으니 잠이 슬슬 오네. 언니가 바닥에 눕길래 나도 그 옆에 가서 누웠어. 오빠가 없을 때는 언니한테 기대야지 어쩌겠어. 내가 등을 내밀 때 부드럽게 만져 주는 건 좋으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언니가 말이 없네. 평소에는 나한테 이러쿵저러쿵 조잘조잘 말을 해 대더니 웬일이지. 이건 비밀인데, 나는 상위 49% 영리한 강아지야. 그렇긴 해도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 그러니까 날 붙잡고 사람 말을 계속하면 불안도가 높아진단 말야. 용건만 간단히 해 줬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내 이름을 부른다든지.. '가자!' '오빠!' 이런 말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고, '앉아', '기다려'는 알아듣긴 하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는 말. 많은 말은 필요 없어.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과 부드러운 손길이면 돼.
언니는 나보다 잠이 많아. 주말에 보면 자거나 먹거나, 먹는 걸 만들고 있거나. 도대체 먹는 건 어디서 가져오는 거지? 오빠는 그걸 위해서 나간 건가?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추운 날에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거라면 오빠는 정말 대단해! 그러니까 언니랑 누워 있다가도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아야지. 오빠가 왔을 때 정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거든.
한참 누워 있다가 또 금세 배가 고파진 언니는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어. 요즘엔 자기가 먹는 걸 비슷하게 해서 내 것까지 만들어 주더라. 이렇게 작고 귀여운 사이즈로.
리코타 치즈 + 상추 + 닭가슴살 샐러드
한 입 거리를 만들어주고는 내가 더 달라고 하니 언니는 단호하게 '앉아'라고 말했어. 아앗, 이럴 때 저 짧은 말을 써먹다니.. 더 달라고 보채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네? 어라? 요즘 좀 이상해. 예전엔 내 말을 무조건 받아주더니 어떻게 하면 날 길들일 수 있는지 공부를 한 것 같은 눈치야. 자꾸 그렇게 변하고 그러면... 내 공격을 받아랏!
나는 밖에서 똥 싸는 강아지라서 언니랑 오빠가 나를 자주 데리고 나가. 내가 언제 마려운 지 알 수 없을 테니 자주 나가는 건 이해해. 근데 나는 아무리 그래도 밖에 있는 것보다 집이 좋단 말야, 오줌을 조금 참아야 한다고 해도 말이야. 언니가 옷을 입히기 시작하면 곧 밖에 나갈 거라는 뜻이지. 근데 오해는 말아줘. 이 옷들은 내 취향은 아니야. 너무 화려해서 눈이 아프다구. 저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검은색 하트가 그려진 옷 밖에 없지.
이건 뭐 알록달록의 극치야
이번주에 새로 장만한 옷 이래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갔어. 볼 일을 본 다음엔 집에 바로 가고 싶은데, 언니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거야. 날 어디 버리고 오려고! 불안한 마음에 땅에 착 달라붙는 포복 자세를 취했지. 그랬더니 언니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오빠!"라고 소리치는 거야. 오빠? 오빠가 왔다고?? 내 몸이 변신 로봇처럼 자동 반사적으로 등을 세우고 토끼처럼 귀를 날리면서 뛰기 시작했... 는데 오빠는 보이지 않았어. 뭐야.. 날 속인 거야?
자꾸 그러면 나 삐진다
걷지 않으려고 하니 언니는 번쩍 들어 올려서 날 안고는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한 건물의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곳에서 드디어 오빠를 만났지!
왜 이제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이제 주말에는 날 두고 가지 마...!
근데 언니는 나를 버리려고 한 것이 아니었네. 오빠를 만나게 해 주려고 한 거잖아?
그런 생각을 하자니 오빠가 없는 시간을 엄마 아닌 다른 사람과 이렇게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해. 이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 되었나 봐.
오빠, 엄마, 그리고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