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빠가 씻겨 주었는데 이 호들갑 떠는 언니랑 살게 되면서부터 갑자기 나의 목욕 담당이 언니로 바뀌었어. 나는 화장실도 싫어해. 사방이 색깔 없는 차가운 벽인 데다가 좁기도 좁지. 근데 여기 언니랑 둘이 있게 되다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렇지만 오빠네 집에서 자는 첫날에 어김없이 하는 일은 언니랑 같이 씻는 거야. 오빠랑 있는 건 좋은데 언니랑 같이 화장실에 갇히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
언니는 나를 씻기던 첫날부터 몸 뒤쪽에서부터 따뜻한 물로 적셔 주었어.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은 손놀림에 불편한 심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지. 엉덩이부터 부드럽게 샴푸질 한 다음에 얼굴을 씻길 차례에는 나도 긴장하고 언니도 긴장했어. 언니는 내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꼭 잡아주고 얼굴에 비누칠을 시작했어.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하고 방심하던 순간,
아얏!
뭐 하는짓이야..!!!
눈에 비누가 들어갔잖아!!!
그 이후 나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지. 언니랑 목욕하는 것이 더 싫어졌어. 아니, 서툴면 욕심이라도 없어야지 왜 자꾸 욕심을 내는 거야. 이게 영원하진 않겠지? 오빠가 나를 씻겨주던 때가 그리워졌어. 오빠는 내가 물을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씻기려고 하지. 등 뒤에서부터 박박박박.. 얼굴을 박박... 그러다 보면 머리 위로 물이 줄줄 흘러서 눈으로 들어갈 때도 있고 내가 발톱을 바닥에 붙이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면 오빠는 힘으로 내가 버티지 못하게 막 들어올ㄹ...
잠깐,
내가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그러고 보니 지난주의 목욕은 조금 달랐어. 언니가 내 얼굴을 씻길 때 나를 아기처럼 팔에 안아서 씻기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하니 전처럼 따가운 물질이 머리에서 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지. 나의 날카로운 이빨을 덮고 있는 입 주위의 털과 콧구멍까지 잊지 않고 닦아주었어. 난 샤워기의 커다랗고 흉측한 몸집과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싫어. 그런데 그것을 내 얼굴에 직접 갖다 대지 않고 손바닥에 물을 담아서 헹구는 것이 좋았어. 그때 나는 언니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말이야, 언니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 눈은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