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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Nov 24. 2024

주말의 뚱자

목욕을 싫어하는 내가 목욕하다가 잠든 썰

스르르륵... 눈이 감긴다.

스르르르륵.... 잠이 온다.


따뜻한 공기와

반복되는 물소리..


내 머리는 언니의 팔에 기대어

힘이 빠진 채로 늘어져 있었지.


'따뜻하고.. 편안하네...'


자꾸 뭔가가 눈 위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 있다가 자칫 잠이 들지도 모르겠어.


"뚱자야 일어나!"

"다 씻었어. 일어나야지!"


뭐야, 나 지금 씻다가 잠든 거야?

제일 싫어하는 목욕을 하다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목욕하는 것을 아주, 무척, 매우 싫어해.


원래는 오빠가 씻겨 주었는데 이 호들갑 떠는 언니랑 살게 되면서부터 갑자기 나의 목욕 담당이 언니로 바뀌었어. 나는 화장실도 싫어해. 사방이 색깔 없는 차가운 벽인 데다가 좁기도 좁지. 근데 여기 언니랑 둘이 있게 되다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렇지만 오빠네 집에서 자는 첫날에 어김없이 하는 일은 언니랑 같이 씻는 거야. 오빠랑 있는 건 좋은데 언니랑 같이 화장실에 갇히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


언니는 나를 씻기던 첫날부터 몸 뒤쪽에서부터 따뜻한 물로 적셔 주었어.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은 손놀림에 불편한 심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지. 엉덩이부터 부드럽게 샴푸질 한 다음에 얼굴을 씻길 차례에는 나도 긴장하고 언니도 긴장했어. 언니는 내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꼭 잡아주고 얼굴에 비누칠을 시작했어.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하고 방심하던 순간,


아얏!

 하는 짓이야..!!! 

눈에 비누가 들어갔잖아!!!


그 이후 나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지. 언니랑 목욕하는 것이 더 싫어졌어. 아니, 서툴면 욕심이라도 없어야지 왜 자꾸 욕심을 내는 거야. 이게 영원하진 않겠지? 오빠가 나를 씻겨주던 때가 그리워졌어. 오빠는 내가 물을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씻기려고 하지. 등 뒤에서부터 박박박박.. 얼굴을 박박... 그러다 보면 머리 위로 물이 줄줄 흘러서 눈으로 들어갈 때도 있고 내가 발톱을 바닥에 붙이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면 오빠는 힘으로 내가 버티지 못하게 막 들어올ㄹ...


잠깐,

내가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그러고 보니 지난주의 목욕은 조금 달랐어. 언니가 내 얼굴을 씻길 때 나를 아기처럼 팔에 안아서 씻기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하니 전처럼 따가운 물질이 머리에서 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지. 나의 날카로운 이빨을 덮고 있는 입 주위의 털과 콧구멍까지 잊지 않고 닦아주었어. 난 샤워기의 커다랗고 흉측한 몸집과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싫어. 그런데 그것을 얼굴에 직접 갖다 대지 않고 손바닥에 물을 담아서 헹구는 것이 좋았어. 그때 나는 언니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말이야, 언니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 눈은 마치...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는 눈빛이었어.



요즘엔 애 대신 개를 키운다더니 내가 그 개인가...!

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지.


애착 인형을 안고 자는 내 모습이야
똘망똘망한 내 모습이야
하지만 이런 옷은 입히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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