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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조울증이 의심될 때는

아내가 밥을 합니다.

by 윤영

남편은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이는 결혼을 결심하는 데 있어서 크게 작용했다. 나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걱정하고 울고 웃는 반면, 남편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닭날개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닭다리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 사이에 장점인 것처럼, 그의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 점이 좋게 작용하는 몇 안 되는 경우였다.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뭔가를 만들어 먹을 여유가 있는 날에는 그 전전날부터 뭘 만들까를 궁리한다. 우리 둘이 맛있는 것을 편안하게 먹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 주는 요리가 으레 그러하듯 남편의 요리는 밖에서 먹는 어떤 요리보다 맛있다. 나 역시 얻어먹기만 하진 않는다. 요리는 8할이 남편 담당, 2할은 내 담당이다.


금요일 밤부터 뭘 먹을지 고민하던 남편은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커피에 우유 거품을 섞어 주고, 블루베리 망고 요구르트에 베이글을 호텔 브런치처럼 차려 준다. 석식 메뉴는 짜파게티와 탕수육. 짜파게티 하나도 대충 하는 법이 없는 그는 양파와 파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분주하게 파를 썰어 소분을 하고 양파는 매운 기를 빼려고 찬물에 담가 둔다. 재료 정리를 하고 나서는 바닥을 청소하고 아침에 물을 줘서 화장실에 있는 큰 올리브 화분을 옮긴다. 한 번도 침대에 눕거나 자리에 앉지를 않는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평소와 다르게 요리를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비에 젖은 강아지를 씻기며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의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오늘 왜 그래?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아."


"응? 아닌데?"


"맞는데~ 누가 그랬어? 내가 혼내 줄게."


"하하, 진짜 아니야. 비가 와서 그런가..."


"비염 때문에 몸이 안 좋은가 보네. 아님 조울증이야?"


말을 하고 보니 우습다. 사람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면 크게 한숨을 쉬는 것이 몸에 좋다고 한다. 말을 안 하고 속으로 삭이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남편은 그런 적이 없었으니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이겠지. 조울증은 너무 갔다. 괜히 호들갑 떨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는데..


남편 먹으라고 만들어 준 매쉬 포테이토 (남편과 뚱자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매우 번거로운 나의 소울 푸드)가 줄어들지 않는다. 역시 그랬군! 이럴 땐 나의 예민함이 도움이 된다. 지금 그는 입맛이 없다. 그렇기에 요리할 기분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벼운 사이드 미러 접촉 사고로 병원 치료까지 받겠다던 남자, 타지로의 반복되는 출장, 내 집 마련과 성공을 향한 매일의 노력, 실리콘으로 막아도 다시 새는 배수구.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늘 미소 짓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남편은 항상 웃었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지만 힘들 때 충분히 힘들어하는 것이 나에겐 인간적이다. 힘들 때는 온전히 힘들어만 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무엇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더 힘을 내야지'로 결론이 다.


잠시도 쉬는 법을 모르는 그를 억지로 상에 앉히고 메쉬 포테이토를 한 입 먹였다. 잠깐 앉았다가도 곧 일어나 주방에 접시를 갖다 주려는 그에게 "먹을 때는 먹기만 해!"라고 말하곤 오늘 저녁은 내가 하기로 한다.


결혼 이후 나도 남편에게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듯, 남편도 그럴 것이다.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감정이 일정하고 매번 웃을 수는 없다. 배우자가 힘들어하고 지쳐 보일 때에는 잠시 상대에게 쉴 틈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주자.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 대도 그 역시 똑같이 할 것을 안다.


보조등만 켜둔 적당한 조도의 안방에서 금세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오랜만에 그가 낮잠을 자고 있다는 신호에 나는 안심한다.


올리브 나무는 추운 겨울을 겪고 난 이후 더 잘 자란다.



*조울증: 비정상적 흥분 상태인 조증과 비정상적 우울 상태인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기분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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