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에 내가 멈추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달리기를 싫어한다. 학창 시절에는 반에서 단거리 달리기 대표로 뽑힐 만큼 달리기를 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숨이 차고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 해야 해? 나는 그냥 내 페이스대로 걷겠어' 라며 달리기를 멀리했다. 그러다 운동에 열정적인 남편을 만나 조깅화를 장만하고, 성화에 못 이겨 한 달에 두 번 정도 양재천을 뛴다. 어제가 바로 그 뛰는 일요일 밤이었다.
남편은 시작 전부터 나에게 걷듯이 뛰라고 조언했다.
팔은 많이 움직이지 말고,
발바닥은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이나 뒷부분부터 지면에 닿게.
잔소리도 자꾸 들으면 효과가 있나 보다. 뛰는 것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나의 자세를 보며 뛰던 남편은 "그렇지! 잘하네." 라며 칭찬을 날렸다. 인정 욕구가 많은 나는 칭찬에 유독 약하다. 신이 나서 달리다 보니 무릎이 아파왔다.
"나.. 무릎이 아파."
"왜 그러지? 한 번 볼게. 자세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남편은 내가 뛰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발이 팔자로 나가서 그런 것 같단다. 나는 걷는 모습도 팔자걸음인데, 그것이 뛰는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가 보다. 평소에 자세가 바르면 뛸 때도 덜 힘든 것 같다. 11자로 발가락을 똑바로 두고 달리니 확실히 무릎 통증이 덜했다. 그런데.. 무릎은 덜 아픈데 조금씩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오는 그 느낌, 참 싫어하는 그 느낌이 왔다. 나는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내 발은 걸음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걸 보던 남편이 또 말했다.
"빨리 뛰지 않아도 돼.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해."
"왜 중간에 멈추면 안 돼? 나는 쉬고 싶은데.."
"중간에 멈추면 다시 제 속도를 찾는 것이 힘들어."
그렇게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밤의 달리기는 끝이 났다. 운동화 끈을 묶을 때는 시간이 안 갈 것 같았는데 어느새 끝이 나서 씻고 쉬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나는 나에게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말했다. "고마워, 그래도 덕분에 내가 뛰네."
집에 와서 마신 하이볼은 어느 때보다 달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걸음을 의식하며 11자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