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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Mar 28. 2024

소유냐 존재냐

가질수록 더해지는 불안함에 대해서


당근에서 유튜브로 수업을 한다는 것을 뒤로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에게 오전 10시-11시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글 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소유냐 존재냐'라는 에리히 프롬의 책 이름이 자주 떠올랐다.

그 이유는 소유로 인해 얻어지는 괴로움을 목격하거나, 혹은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 늦게 가면 아파트 주차장에 차 세울 곳이 없어 서둘러 집에 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가지고 있으면 차만큼 번거로운 것도 없어. 때때로 운전을 해 줘야 하지, 세차해야 하지, 차 세울 곳 없으면 걱정되지.. 그리고 사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된다고"


"그렇지, 하지만 그만큼 편한 것도 있잖아. 우리가 차 없으면 이렇게 주말에 편하게 다니겠어?"


"그건 그래. 하하"

 




다음날인 월요일엔 남편이 소유한 집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요즘 전세 물량이 급격히 많이 나와서 시세보다 조금 싸게 내놓는 것이 어떨까 하다고..


남편이 "어떻게 할까?" 하고 묻기에 조금 싸게 내놓자고 했다. 안 나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는 것이 우리의 시간과 돈과, 그리고 걱정을 아낄 수 있으니..


남편은 말했다. "요즘은 소유의 무거움에 대해서 많이 느끼게 되네. 집이 안 나가면 당장 전세 계약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야."


"그래도 금방 나갈 거야. 걱정하지 마."


평소에 대부분의 일을 낙관적으로 전망해서 촉이 안 좋다는 말을 듣는 나는, 어떤 근거도 없이 말했다.





남편이 이른 생일 선물로 노트북을 사줬다. 최근에 나온 갤럭시 북 프로 360. 200만 원이 넘는 이 노트북을 받으며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증명(?) 받은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이걸로 뭐라도 만들어 볼게!" 라면서 내 존재를 증명해 보일 참이었다.


매일 아침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고, 영상 편집을 하길 일주일... 그 일주일은 참으로 길었다. 200만 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고, 나는 노트북이 나에게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즐기기보다는 책임감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남편이 노트북을 해보려고 열었는데 켜지지 않는 것이다..! 노트북은 충전도 되지 않고 부팅도 되지 않은 채 요지부동이었고, 그날은 토요일이어서 부리나케 근처의 삼성 대리점에 연락해서 방문했더니

본사에서 문제가 있어서 찾고 있는 모델이라며 새 제품으로 바꿔 주겠단다.


이틀 동안 나는 노트북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 노트북이 없으니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영상 편집도 하던 대로 핸드폰으로 하면 된다..! 앗싸..! 아침 10시-11시는 글 쓰는 시간이라고 스스로 정해두었던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 늦잠을 즐겼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돌아온 노트북...


남편은 퇴근하고 밥을 먹자마자 노트북에 열심히 보호 필름을 붙이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깔아 주었다. 나는 책을 읽다 말고 지문을 등록하고, 이메일을 등록하고, 다가올 내일의 과업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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