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초반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것, 둘은 말을 예쁘게 하는 것. 질문은 나에 대한 관심의 정도라고 판단했고,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곧 마음의 예쁨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보면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남편은 질문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별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연애할 때도 지금도 질문을 많이 하는 쪽은 나다. 나는 진지한 대화를 좋아하고, 질문을 통해 상대의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꺼내는 것에 관심이 있지만 남편은 줄곧 기다리는 -보다 정확히는 고요히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말할 때가 되면 말하겠지'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 연애 때 섭섭함은 대부분 여기서 발생했고 나의 주된 레퍼토리는 "도대체 왜 질문이 없어?"였다.
그렇다고 질문에 대한 답마저 없었다면 미칠 노릇이지만 물어보는 것에 대답은 잘했다. 그 대답에 꾸밈이 없고 투명해서 마음에 들었다. 잘 듣기도 했다. 요즘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만큼 잘 듣는 사람이 귀하다는데, 남편은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보니 나처럼 질문 많은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붙어 있다면 그 피로도가 상당하겠구나 싶다.
꾸밈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말을 꾸미는 것에도 서툴렀다. 나는 몇 번씩 혀에서 말을 머금다 내뱉는데 남편이 머릿속에 있는 말을 생각 없이 툭 뱉는 것처럼 느껴질 때 심기가 거슬렸다. 특별히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그것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말을 길게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거 해줘" 보다는 "이거 해 줄 수 있을까?"라는 말이 더 예쁘게 들리는 것처럼. 그러나 마음이 예쁘지 않아서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다는 단정은 성급하다. 표현 방법을 잘 모르거나 말을 늘리는 것이 익숙지 않거나, 혹은 간결한 것을 좋아해서 일 수도 있다.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내가 될 수밖에없지만 그 기준이 너무 좁고 완고하다면타인에 대한 무언의 강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우자가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원인은 무엇일지,다름에서 오는 장점은 무엇 일지를생각해 보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꽤나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