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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두막 May 09. 2021

브런치 삼고초려

브런치 촌장과 부락민들에 대한 감사

 1. 브런치? 먹는 건가?

 “브런치 한 번 해봐요.”

 “브런치?”

 점심 후 산책길에 우리는 직장인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축 처진 어깨와 풀린 눈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아이스 라테를 들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점심시간, 가끔 드라마에서 예쁘게 그려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대로 살 수는 없어. 뭔가 변화가 필요해.”

 꽉 막힌 느낌에 삶의 숨통을 트고 싶어 하는 나에게 동료가 브런치를 추천해주었다. 평소 책과 글쓰기를 가까이하는 나를 보고 브런치가 생각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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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에 작가 신청해 봐요.”

 처제내가 놀러 와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동서가 출퇴근길에 브런치를 읽는다고 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브런치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마침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나에게 처제와 동서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권했다.

 삶에서 행운은 사람을 통해서 오고, 그런 사람을 귀인이라고 한다. 나에게 브런치의 길을 알려준 직장 동료와 동서가 그런 귀인이다.  

 이때부터 나는 브런치의 글들을 꾸준히 읽기 시작했다. 나는 스마트폰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알림은 오프 상태이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폰을 손에 잡지 않는다. 무엇보다 핸드폰을 보면 에너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런치는 예외였다. 신기하게도 스마트폰으로 브런치의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점점 더 브런치 운영진과 작가들에게 친밀감과 신뢰가 쌓여갔다.


2. 도전!!

 “자기야, 나 작가 신청했어.”

 브런치를 알게 되고 즐겨 읽고는 있었지만 작가 신청은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선 프로필을 작성하고 작가의 서랍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SNS 문맹인 40대 아재의 도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차분하던 마음에 파문이 일고 갑자기 술이 팍 당겼다. 욕심을 부리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 같고 기분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시험공부 전에 합격수기를 찾아 읽듯이 브런치 작가 신청 관련 글들을 찾아 읽었다. 샘플 글은 그대로 두고 자기소개와 활동계획을 수정해서 그날 밤에 재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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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 작가 신청 또 떨어졌어.”

 “아무나 붙여주는 건 아닌가 보네요. 호호”

 놀러 온 처제에게 낙방의 소식을 전하고 떨어진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합격수기를 펼치고 내가 통과하지 못한 이유와 합격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조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조건 합격하는 법을 발견했어.”

 “정말요? 그런 게 있어요?”

 “합격할 때까지 재신청하면 돼!”

 “호호 그렇겠네요.”

 “100번 떨어지고 나서 그 글들을 모아서 ‘나는 브런치에 100번 떨어졌다’로 책을 쓰는 거지. 어때? 히히”

 이제 더 이상 불합격이 두렵지 않았다. 나에겐 브런치보다 글쓰기 자체가 더 중요했고 브런치 낙방은 글쓰기에 대해 더 궁리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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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야 이리 와 봐.”

 “왜?”

 “재신청할 건데, 글 좀 봐죠.”

 “내가 자기보다 대중적이긴 하지. 호호”

 나는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에 최진석 교수의 기본 학교에 지원한 적이 있다. 1차 시험에서 아내가 글이 좋다고 했고 합격 메일을 받았다. 2차 시험에서 내 글을 본 아내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아프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런 전력이 있는 나는 아내에게 신청글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산책하면서 자기가 했던 얘기 같은데, 그때는 귀에 속속 들어왔는데.”

 “......”

 “나한테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써 봐.”

 내가 전면 수정한 신청글은 아내의 결재를 받지 못했다.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대신 미리 재신청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불합격 메일을 보고 어떻게 글을 쓸지 고민하지 않도록, 신청을 클릭하고 나서 바로 다른 버전의 신청글을 두드렸다. 유비무환이라고, 탈락에 대해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자기야 나도 작가 신청해볼까?”

 두 번째 신청에서 떨어진 나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자기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나는 좀 특이하다고 한다. 나도 아내가 글을 쓰면 훨씬 호응을 잘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작가 신청 코칭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 떨어졌지만 어쨌든 내가 선배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정보나 사람이야. 나조차도 내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거나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하거든.”

 “오우!”

 “우리한텐 정보보다는 사람이 어울리는 것 같아. 맞벌이 부부가 함께 휴직하고 어떻게 사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까?”

 “우와, 그거 괜찮다.”

 아내는 내가 골라준 글감을 좋아라 했다. 당장 쓰라고 했지만 아내는 결국 글 대신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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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떨어지고 나니 유재석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정말이지 싹 다 갈아엎어야 할 판이었다. 내 삶의 키워드가 변화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위대한 기업은 what과 how를 넘어 why에 초점을 맞춥니다. 당신의 why는 무엇입니까?”

 머리도 식힐 겸 유튜브를 보다가 사이먼 사이넥의 강의에 눈이 멎었다. 내가 브런치에 대해 너무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하는가? 블로그도 있고 지금 보고 있는 유튜브도 있지 않은가? 내가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글을 써 나갈 것인가?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자기소개와 활동계획 그리고 샘플 글을 다시 써 나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쓰지 않는 글감인 ‘맞벌이 부부가 함께 휴직하고 사는 법’에 대해 우리의 일상을 진솔하게 적어 내려갔다. 자기소개에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활동계획에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글을 쓸지’에 관해 정리된 생각을 적었다. 다음은 네 번째 신청글이다.


 1) 자기소개

 육아휴직 중인 직장인입니다. 변화를 위해 과정을 여행하는 생활 철학자입니다. 작가 신청의 이유는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추천한 ‘핵심에 집중하라’는 책처럼 브런치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동참하여 세상의 변화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한 줄의 문장으로 깨달음을 얻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를 바랍니다.

 저는 집단 무의식의 힘을 믿습니다. 브런치라는 시간, 공간, 관점의 에너지장 안에서 연결의 퀀텀점프를 이뤄낼 한 점을 보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 활동계획

 제가 앞으로 쓸 주제는 ‘변화’입니다. 소재는 투자, 육아, 독서와 글쓰기, 명상과 걷기입니다. 여기에 관련된 글을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릴 계획입니다. 저는 결과보다 과정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투자로 노동자에서 자본가로 삶이 변화하는 과정, 두 아이의 육아로 남자 사람에서 아빠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 독서와 글쓰기로 나를 만나고 세상과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 명상과 걷기로 몸과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에 관해 제 생각과 객관적 현상을 연결해서 글이라는 도구로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4. 브런치를 미워할 뻔했다. 탈락시키지 않았다면!

 “우와 자기야, 재밌어. 자기 글 좀 쓰네. 히히”

 네 번째 신청하는 글을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꼼꼼하게 읽고는 재밌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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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아내는 볼일을 보러 나가고 혼자서 둘째를 보고 있었다. 둘째가 잠시 노는 사이 메일을 확인하다가 순간 숨이 멎었다. 나는 둘째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빠가 작가가 됐어. 아빠가 작가가 됐어. 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5개월 된 둘째는 아빠가 기분 좋아 보였는지 자기도 헤죽헤죽 웃어주었다. 그렇게 혼자서 한참 동안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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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치지 않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브런치는 나를 작가로 받아들여주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작가가 갖춰야 할 자질들을 가르쳐주었다. 세 번의 불합격은 짧지만 강한 충격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게 해 줬다.

 “첫 번에 통과했다면 브런치를 미워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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