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것(저의 첫 번째 통찰)보다도 더 위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 위대한 비밀이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감 너머로 초월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감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배울 때, 여러분은 행복한 삶,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늘 그 어떤 것이 되엇든 모든 것에 대한 답이기에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이해는 둘이서 함께, 여러분이 아름다운 삶이라 칭하게 될 그러한 것을 창조해 냅니다.
ㅡ 시드니 뱅크스.
“내가 듣기로는…” 그 상인이 입을 떼었다. “당신은 학자인 바라문이고, 상인한테서 일자리를 찾는다면서요. 바라문이여, 당신은 일자리를 구해야 할 만큼 곤궁한 상태에 빠져 있나요?”
“아닙니다.”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저는 곤궁한 상태에 빠져 있지도 않고, 이제껏 한 번도 곤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문들과 살다가 사문 생활을 청산하고 나왔습니다.”
“사문들과 살다 온 사람이라고 곤궁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사문들이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완전한 빈털터리 아닙니까?”
“저는 빈털터리이지요.”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의미대로라면 말입니다. 확실히 저는 빈털터리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저는 곤궁한 것은 아닙니다.”
“한데 당신이 빈털터리라면 무엇으로 살아가실 작정이오?”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으리. 저는 삼 년 이상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얼 먹고 살아가야 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살아오셨군요?”
“어쩌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사실 상인도 다른 사람들의 물건으로 살아갑니다.”
“그럴듯한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상인은 남의 물건을 거저 얻는 것은 아니지요. 그는 그 대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 물건을 주지요.”
“사실상 사람 사는 실정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군요. 누구나 서로 주고받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당신은 빈털터리인데 도대체 무얼 주겠다는 것이오?”
“누구나 자기가 갖고 잇는 것을 주지요. 전사는 힘을 주고, 상인은 상품을 주고, 선생은 가르침을, 농부는 쌀을, 그리고 어부는 물고기를 주지요.”
“아주 지당한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지요? 예컨대 단식 같은 것 말인데요. 그게 무엇에 좋지요?”
“나으리, 그것은 아주 좋습니다. 단식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예컨대 싯다르타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한테서, 아니면 다른 데서라도 오늘 당장 아무 일자리건 얻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초조해하지도 않고, 곤궁해하지도 않으며, 설령 굶주림에 오래 시달릴지라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나으리, 단식이란 그런 데에 좋은 것입니다.”
…
“훌륭합니다.” 카마스와미가 말하였다. “그러면 이 종이 위에 나를 위해 몇 자 좀 써 주겠소?”
그가 종이와 붓을 주자 싯다르타는 글을 써서 그 종이를 되돌려 주었다.
카마스와미는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ㅡ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95쪽.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경험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경험이란 마음, 몸,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마음은 생각과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몸은, 만약 눈을 감고 있다면, 감각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지각(보이는 모습, 소리, 맛, 감촉, 냄새)이 전부입니다.
무엇이 이 모든 것을 압니까?
…
무엇이 생각과 이미지를 알든 그것 자체는 분명히 생각과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이미지가 나타나고, 우리는 그것을 알며, 그것은 곧 사라지지만, 생각이나 이미지를 아는 그 무엇인 ‘나’는 그대로 남아서 다음에 나타나는 생각, 감각, 지각을 압니다. 생각은 사라지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정확히 무엇이든, 분명히 ‘나’는 때때로 끊기는 감각으로 이루이진 것일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모습, 소리, 맛, 감촉, 냄새도 모두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나’는 그대로 남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도 나를 이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발견하는 첫째 사실은, 만약 우리가 과거나 생각을 참고하지 않고 ‘참된 자기’의 친밀한 경험만을 살펴본다면, 참된 나는 생각, 느낌,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ㅡ순수한 앎의 빛. 루퍼트 스파이라.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