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왜 쓰는가?

글을 왜 쓰는가? 도덕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칭찬도 놀란 듯 하고 비난도 놀란 듯 하라.”

글을 쓰는 이유가 타인의 인정과 칭찬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고유성보다 사회의 일반성을 높이 치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릴 때부터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정답으로 길들여져 온 이들은 자신이 쓴 글조차도 외부에서 옳다거나 좋다고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자. 글로 칭찬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좋은 글이라고 인정받은 글은 글을 쓴 이에게도, 글을 읽은 이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좋은 글은 글이 자기 자신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하나의 물건처럼 대상으로 남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글이 자기 자신을 자극하지 못하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모두 시간낭비일 뿐이다.


글을 왜 쓰는가? 글을 쓰는 이는 글을 통해 자기와 접촉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자기와 접촉하게 되면 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 자신이 우뚝 선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거나 쓴 글을 보고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 자신을 자판기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타긴 했는데 산으로 노를 젓고 있는 셈이다.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어떤 피드백을 받고 싶은가? 칭찬은 비난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좋은 글은 나쁜 글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좋은 글이라는 말은 자기를 꾸미는 또 하나의 장신구일 뿐이라는 뜻이다. 글은 내면의 액세서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크게 속이는 짓이다. 큰 착각과 오해로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글은 쓰는 이에게나 읽는 이에게나 모두 자신을 만나는 길이어야 한다.

글을 쓰면서 읽는 이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이 궁금해지는 것,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느라 세상과 단절된 상태를 경험하는 것, 점점 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더 높고 새로운 곳으로 건너가는 것.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다. 내 삶의 수준이 낮은 이유다.

나는 지금까지 내 삶을 나 자신으로 보지 못했다. 그저 좋은 삶을 위한다는 피상적인 시선으로 저곳에 있는 삶의 모형을 쫓을 뿐이었다. 나는 내 고유한 삶이 아니라 타인의 일반화된 삶을 동경해온 것이다.

글자가 아니라 나로 글을 쓰고, 말이 아니라 나로 말하며, 생각이 아니라 나로 삶을 운전하자. 글을 닫으며 스스로 물어본다. 이 글에는 글자가 있는가 내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