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탁월해지려면

기본학교 4주차 과제('생각'을 가지고 글을 써보라.)

자유와 탁월은 나를 아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생각하는 존재다. 왜 생각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는 고유한 성질이 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고무는 늘어나며 돌은 딱딱하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하고 소는 풀을 먹으며 개는 낯선 이를 보면 짖는다. 사람도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 각자의 기질이 다르다.

나는 세계에 산다. 따라서 세계의 속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출 때 삶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세계의 본질은 생각이다. 세계는 생각이라는 벽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함으로써 세계를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럼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세계다. 내가 세계 속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가 내 안에 산다. 세계는 내 간이나 폐와 같다. 내가 사는 세계가 곧 나 자신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 세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세계를 생각하는 키워드는 높낮이다. 높낮이를 가지고 생각해야 세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각각의 가치와 영향력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세계에서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자유와 탁월은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행동이 힘이 들고 자꾸 막힌다면 어찌하는가? 이것은 내 철학이 아직 강하지 않고 철학에 대한 자각이 약해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식과 생각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지식과 생각 때문에 자기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지식과 생각은 나의 주인이 될 수도 있고 종이 될 수도 있다. 지식과 생각에 내 삶을 빼앗기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내가 주도권을 잡고 지식과 생각을 사용하면 내 삶은 높아지고 넓어진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내가 지식과 생각을 운용하면 지식과 생각은 나에게 대상이지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은 아주 지적이고 높아 보인다. 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질문이다. 왜 그런가?

위의 질문을 옳다고 여기고 지식과 생각을 나로 보지 않으면 지식을 쌓고 생각을 하기 위한 동력을 내 안에서 구하기 어렵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을 찾는 힘은 나 자신이 목이 탈 때 가장 발휘되기 쉽다. 그럼 이런 이유를 제외하면 위의 질문이 가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위의 질문은 무가치하다. 실재하는 세계는 마음을 넘어서 있다. 지식과 생각은 실재하는 세계이고 지식과 생각을 가진 나는 마음이다. 지식과 생각이 영향력과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내 삶을 만드는 진짜 나다. 지식과 생각을 가진 나는 높이가 0인 감각일 뿐이다.


꾸준히 지식과 생각을 높이고 새롭게 해야 한다. 이것이 내 존재 이유고 본질이다. 지식과 생각이 꾸준히 높아지고 새로워져서 마음에서 끝도 없이 멀어지면 다시 돌아온다. 커다란 원을 그리고는 종국에 마음과 만나 하나를 이룬다. 이제 실재하는 세계는 곧 마음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조금 더 땅으로 내리면, 내 철학에 맞는 삶을 살면 그게 곧 깨달음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들에 용기를 더해 깨달음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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