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배우고 있는가'이다. 배우고 있다면 더 이상 행복을 갈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 불행한 느낌은 정체되어 있다는 절망감에서 온다. 성장하고 있다면, 배우고 있다면, 그래서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 마음엔 항상 행복이 숨 쉴 수 있다. 행복을 소유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늘 위태롭다. 손에 들어온 건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행복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를 존재적인 행복이라고 부르자. 행복이라는 개인적인 느낌에서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자. 순간순간 배움을 통해 삶이 더 높아지고 확장하고 있는가? 성장하는 삶 속에는 불행이 깃들 자리가 없다.
누군가 말했다. 배움은 배부른 자의 한가로운 일이 아닌가? 나는 이 말에 반쯤 동의한다. 배움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기반이 아주 중요하다. 분명 물질적인 기반은 생각을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반대의 상황도 긍정한다. 물질적인 배경 위에서 생각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생각 위에서 물질적인 풍요가 싹트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이 말에 너무 쉽게 동의하거나 반대하지 말자. 사람마다 이 말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어려움의 크기는 다르니까 말이다. 핵심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 결심할 수 있는가이다.
'모든 수고로움을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나는 배우고 성장하고 행복할 것인가?'
*사람을 생각으로 보면 사랑하기 어렵다. 사람을 ‘상태'로 보자.
-> 사람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또 사람을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근본이 약한 사랑은 쉽게 뿌리 뽑히고 변한다. 사람을 '메마른 생각'으로 대하면 사랑을 지속하기 어렵다. 우리의 생각을 잠시라도 지켜보고 있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생각은 기본적으로 분리감을 그 배경으로 탄생한다. 따라서 사랑스럽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기 쉽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 이전에 '상태'로 존재한다. 장자에는 '빈 배 이야기'가 나온다. 고요히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쿵 하고 다른 배가 부딪혔다. 화가 나서 한 소리 하려고 돌아보니 빈 배였다. 화내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장자가 하고픈 이야기도 사람을 '메마른 생각'이 아니라 '상태'로 보라는 거다. 상대의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내 마음에 화날 여지가 있겠는가.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 기분이 안 좋아도 느낌은 좋을 수 있다. 기분은 고립된 자아의 것이지만 느낌은 상태에서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분과 별개로 늘 행복할 수 있다.
-> 나는 내 기분이 항상 짐스러웠다. 이 기분이란 녀석이 한 번 토라지면 그 비위를 맞추느라 내 행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기분이 내내 좋다는 말이 아니다. 기분은 예와 마찬가지로 왔다 갔다 한다. 다른 점은 그런 기분의 변화에 내 행복을 맞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름은 계속 변하면서 하늘을 가리지만 푸른 하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건 이해의 문제다.
기분과 행복은 구름과 푸른 하늘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 기분이 나빠도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도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기분은 에고의 영역이고 행복은 '상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억하기'이다. 영화 '이터널스'에 보면 마동석의 기를 빨아먹은 괴물이 앤젤리나 졸리를 최면 상태에서 잡아먹으려는 장면이 있다. 괴물은 마동석이 졸리에게 한 이야기를 읊으면서 졸리를 최면에 빠뜨린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중요한 말을 되뇐다.
'Remember'
이 말에 최면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졸리가 괴물의 목을 자른다. 어떤 기분에서도 항상 배경으로 존재하는 '상태 속의 행복'을 기억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