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고난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태 안에서 생각이 저절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내 운명은 무엇인가?
나는 약한 몸과 혼란스러운 마음과 어두운 정신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해 종국에는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운명이다.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명상을 하고 독서를 해 보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어느 날 상태와 문명(생각)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이 내 운명이 종식되는 시작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19살까지 번뇌에 휩싸여 살았다. 대학교에 가서부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명상은 몇년 후 완전한 몰입감을 3개월 정도 두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전국대학교복싱동아리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다음날 내 몸은 1센티 가량 퉁퉁 붓고 가슴이 답답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를 받아봤지만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소화는 안되고 머리는 항상 초점이 맞지 않아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가 20년 정도 이어지면서 나의 삶을 전체적으로 파괴했다. 몸과 마음과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모두가 자살이 떠오를 정도로 지옥같았다.
그러다 기본학교에 합격해서 문명적인 사고를 훈련받게 된다. 이전에는 명상적인 세계관에 집착하고 있었다. 기본학교를 다니면서 나를 망친게 명상임을 깨닫고 문명적인 사고와 철학에 온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더 안좋아졌다. 명상도 철학도 나를 살리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나는 질식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몰입감이 필요하다는 기억을 다시 하면서 상태와 문명(생각)이라는 이론체계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운명이 흐려지기 시작한 첫날이다.
-> 나는 최근에야 내성적이지만 소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내성적이면서 아주 소심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나를 내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기표현에서 만족감을 얻지도 못했고 타인의 시선도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내 운명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아온 날들과 이대로 간다면 살게 될 날들이 환히 보였다. 내 운명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예전처럼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신기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아직 내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지만(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이제는 예전처럼 운명에 눈이 가린 채 허우적대지 않는다. 내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고맙습니다. 두 손 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