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압니다. 보행기를 (본인의 생존방식을) 학습해 가는 것을.
둘째가 인생 첫 보행기 시승식을 치른 날이었다. 보행기라기보다 약간 미래형 탈것처럼 생긴 그것을 둘째가 꺄르륵거리자, 첫째가 살짝 흥미를 보였다.
“나도 이거 태워줘. “
->‘대신 사진 보여줄게 귀염둥‘
첫 번째 보행기 사진 속 그녀는 다름 아닌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왜 나 저렇게 울었어?”
“음… 아마, 보행기가 조금 낯설었을지도?” 나는 최대한 기억을 조작해 보기로 했다.
“근데 나중엔 진짜 잘 탔어! 사진도 많아!”
사실이었다. 아기 엄마의 사진첩에는, 웃으며 보행기를 질주하는 사진들이 연이어 나왔다. 그제야 첫째는 조금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첫째를 재우는 시간이 왔다
나는 분리수면이라는 깃발을 들고 꽤 오랫동안 싸워온 사람이다. 혼자서 잠드는 법을 익히는 것은 독립심의 출발이며, 아빠의 하루에도 휴식을 주는 거룩한 의식이라 믿어왔다.
“그럼 오늘은 아빠랑 잘 수 있는데, 내일 포도 스티커 (분리수면을 잘한 날 포도 스티커 한 장!)를 못 받을 수도 있어. 괜찮겠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딸은 훌쩍이며 말했다.
그 말에 묘하게 가슴이 찌릿했다.
나는 누가 달래준 적 없는 어린 시절을 살았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었던 기억이 없다. 그저 빨리 커야 했다.
그런 나에게 “나는 아직 아가야”라는 말은 문득 깨달음을 줬다.
혹시 나는 나의 자유시간을 위해 너무 일찍, 너무 빠르게 딸을 독립시키려 한 건 아닐까.
물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외부의 어른들과 싸우고, 미팅하고, 정리하고, 감정노동하고 돌아온 뒤의 1~2시간은 어쩌면 나의 정신건강 보험이다.
그런데 오늘 밤만큼은 그 시간과 딸이 내게 주는 말 없는 애정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내가 포도 스티커를 안 줄수도 있다고 (사실 말만 그렇지 없던 이유도 만들어서 주곤 한다) 했을 때 딸이 보여준 눈물은, 어쩌면 내 어린 시절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었던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은 그냥 안고 자려고 한다.
내일은 다시 스티커 이야기를 꺼낼지 모르지만, 오늘은 내가 졌다. 아니, 졌다기보다 져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크고, 그 손은 어느 날 갑자기 잡을 수 없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