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와 공급, 그리고 싱크대 앞의 사랑
딸아이는 요즘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아빠는 왜 설거지를 그렇게 좋아해?”
그 물음에는 진심 어린 호기심이 담겨 있다.
아이의 눈에는, 하루 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내가 오직 설거지를 할 때만큼은 참 평화롭고 정직해 보이나 보다.
나는 대답 대신 그릇을 조용히 헹군다. (속으로는 ‘아빠, 사실 설거지 하는 거 안 좋아해’)를 외치지만)
그게 내 방식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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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딸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그 자체로는 꽤 신비로운 일이다.
물론 ‘딸은 원래 아빠를 좋아하지’라는 통념이 있지만,
그 말은 왠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린 듯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생각했다.
딸이 나를 좋아하는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아직 잘 모를 뿐이다.
애정은 공기처럼 오지만, 계산처럼 남는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1)
“사과를 깎아줄 때, 반대 성별의 부모가 깎아준 사과가 더 맛있다고 느껴진다”
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즉, 똑같은 사과라도 누가 깎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사랑도 그런 걸까.
같은 행동이라도 상대에 따라 다른 감정의 채도로 다가오는 것.
나는 설거지를 하고, 딸은 그 설거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작은 시간의 틈에, 무언가 ‘다른 맛’이 깃든다.
시장의 논리와 아이의 마음
경제학에선,
좋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을 말한다. 아이의 사랑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딸이 바라는 아빠의 모습을 나는 운 좋게, 조건을 거의 만족시킨 공급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딸은 나에게 그만한 수요를 보여주는 고객이다.
물론 시장은 변한다.
어느 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땐 나는 자연스럽게 퇴장하면 된다.
지금은 그저, 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을 조용히 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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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왜 하냐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아빠로서의 체면을 지키고,
딸은 그 옆에서 이유 모를 호기심을 보인다
그게 꼭 사랑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과 아주 가까운 어떤 감정임은 분명하다.
그건,
내가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받는다는,
생애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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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은 아직 말도 못 하고
이 장면의 관객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와도 이런 설거지 대화를 나눌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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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늘도 설거지를 한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싱크대 앞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를 증명한다.
딸이 내게 다가와 묻는다.
“아빠는 왜 설거지해?”
나는 미소를 짓는다.
“응, 내일 또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말이야.”
그 순간,
우리는 아주 짧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1) 니혼대 감각연구소, 『Journal of Sensory Studie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