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중년의 옷장은 진화하는가

나이키 반바지에서 존롭까지

30대의 나는

나이키 반바지와 Urban Outfitter 티셔츠로도 충분했다.

그게 비록 출근길이었더라도,

그리고 그 길 끝이 Park Avenue라더라도.



2010년대 초반, 뉴욕 거리엔 룰루레몬의 물결이 일었다.

사람들은 유니폼처럼 그것을 입었고, 나는 점점 편안한 옷에 익숙해졌다.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였다.

정장을 입는 사람은 대부분 결혼식에 가거나, 법원에 가거나.

둘 다 아니라면, 그냥 월스트리트에 인터뷰를 보러 가는 NYU Stern 졸업반 학생들일 가능성이 컸다.


나 역시도 패션의 손을 놓기 시작했다.

그 손은 너무 가볍고 편했기 때문이다.

여름엔 Havaianas조리나 allbirds 운동화, 겨울엔 나이키 운동복 바지에 후줄근한 스웨트셔츠.

금융계에 종사하면서도 그랬다.

물론 입사 초기에는 나도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맸다.

하지만 VP, 그러니까 차/부장급이 넘어서면서부터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국 실력 아닌가요?’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군만두미식왕 형님의 탄식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동네 큰 형님이신 군만두미식왕 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었다.

형님은 나를 잠시 훑어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동네 패션의 달인 두 형님들, (동대문미남형님, 복근암살자 형님)과 나를 동네 맞춤정장집으로 연행해 가시면서,


“글쓴이야, 그래도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이렇게 옷 입고 다녀도 되는 거냐, 정장 하나 맞추러 가자 “


그 말이 아주 사무쳤다.

아니, 따뜻하게 사무쳤다.

맞다. 나, 사실 옷 잘 입던 사람이었다.


예전엔 광장시장에서 배장남 청바지를 도매로 사 와 코 묻은 대학생들에게 판매도 하며, 스스로도 ‘핏’ 하나로 옷을 살려보던 나름 방귀 좀 뀌어본 나다.


여하튼, 군만두미식왕 형님의 손에 이끌려 정장을 맞춤하던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패션’이라는 오래된 본능을 꺼내 입었다.



중년의 옷장은 진화하는가


맞춤정장을 입고, 존 롭 구두를 신고, 롤렉스를 찼다.

알버트 서스턴 멜빵도 사봤고, 양말도 오버 더칼프, 바지는 브리오니.

어느새 나는 ‘회사에서 가장 화려하게 입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좀 멋지게 말하자면,

‘본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뉴욕은 실력, 한국은 분위기


뉴욕은 실용의 도시였다.

일을 잘하면 그만이고,

옷은 대체로 배경이었다.

“Show me your work, not your wardrobe.”

그게 대다수 사람들의 태도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명함을 꺼낼 때 손목에 보이는 시계,

재킷 안쪽의 안감, 구두코의 광.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소개하는 인트로다.

‘말 한마디’보다 ‘구두 한 켤레’가 신뢰를 얻는 시대.

그러니 대표는,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역할을 입는 것이다.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이은희 교수의 논문 (1)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는 외적 이미지가 직무 평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잘 입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스타일은 결국 태도다


지금의 나는, 회사 대표로서 단정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옷을 입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옛 뉴욕의 한 조각이 숨어 있다.

겨울밤, 맨해튼 거리를 후드티 입고 걸어가던 그 자유로움.

그 시절을 완전히 벗어버린 건 아니다.

그건 단지 옷장 깊숙이 접어둔 한 계절일 뿐이다.



옷을 입는다는 것에 대하여


옷은 자기를 포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패션은, 그저 스타일을 넘어서

인생의 챕터를 바꿔주는 작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내게 패션이 그랬듯이.


참고 문헌:

(1). 이은희 (2015). 외적 이미지가 직무 평가에 미치는 영향 – 한국 직장 내 인식에 대한 고찰.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