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세계관을 마무리 지은 <Girls> 활동 이후 에스파는 세계관의 두 번째 장을 열며 다양한 장르로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먼저 종전의 스타일과 정반대인 <Spicy>로 스펙트럼의 범위를 넓혔고 이어서 기존 에스파식 SMP의 심화 버전인 <Drama>로 깊이를 더한 것이다. 그리고 1년간에 걸쳐 확장된 팀의 스펙트럼은 이제 이를 기반으로 한 에스파식 SMP로 비로소 본격화되고 있다.
먼저 앨범의 선공개 타이틀인 <Supernova>가 모습을 드러낸다. 데뷔곡 <Black Mamba>부터 시작하여 <Drama>까지 이르러 팬들 사이에서 소위 '쇠맛'이라고 불리게 된 특유의 신스 사운드를 토대로 하되 여기에 <Spicy>의 경쾌함을 더해 진입 장벽을 낮추었다. 음악이 지향하는 목표와 대중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곡으로 특히 브릿지 이후의 전개는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 듣는 재미를 더한다.
<Supernova>가 확장된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에스파식 SMP라면 더블 타이틀인 2번 트랙 <Armageddon>은 이와는 달리 기존 SMP의 재구성에 가깝다. 1세대 아이돌의 세기말적 감성을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 연출과 베이스 사용이 돋보이는 곡으로 가볍게 접근하기엔 다소 버거운 감이 있지만 오랫동안 SMP를 즐겨왔다면 이러한 구성과 전개가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또 여기에 <Armageddon>의 무드를 보충하는 힙합 트랙 <Set The Tone>과 <Mine>이 더해지면서 앨범의 초반부를 안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이끌어 나간다.
<Mine> 이후 <Licorice>부터 진행되는 급격한 무드 변화도 꽤 인상적이다. 전작인 <Drama> 앨범에서 타이틀 <Drama>와 2번 트랙 <Trick or Trick> 이후 3번 트랙 <Don't Blink>, 4번 트랙 <Hot Air Balloon>으로 이어지는 트랙 배치 방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데, 연결되는 두 곡 사이의 격차가 너무 넓어서 이질적인 느낌을 낸 전작과 다르게 이번에는 서로 연관되는 장르로 엮어내면서 이질성을 줄이고 이전보다 부드럽게 방향 전환에 성공하였다.
<Licorice>부터 <Long Chat#♡>, 그리고 앨범 종반부의 팝 펑크 트랙 <Live My Life>처럼 타이틀 못지않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트랙들로 가득 채운 것 역시 에스파 첫 정규 앨범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다.
타이틀을 비롯한 초반 수록곡으로 무게가 쏠려있어 후반부 수록곡들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해 정규 앨범의 의의를 충족하지 못했던 일부 앨범들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 이 앨범은 종반부까지 무게 중심을 가다듬었다. 마지막 트랙 <목소리 (Melody)> 같이 전형적인 아이돌 발라드의 틀을 따르는 곡들에서 참신함이 떨어지는 감이 있어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가히 웰메이드 케이팝 앨범이라고 자부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