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늘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그 안엔 단 하나의 단순한 진리가 있다.
“이득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
그 진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
조우민 선생님.
젊꼰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수학 교사다.
그는 철저했다.
수업, 회의, 인간관계 — 모든 것엔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의 기준은 단 하나,‘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는 숫자를 사랑했다. 0 아니면 1, 손해 아니면 이득. 그의 세계엔 회색이 없었다.
사람 관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그는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특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겐 말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대답하면,
“역시, 우리 반 보석이야.”
그 말에 아이는 웃었고, 그는 그 미소를 자랑처럼 교무실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반대로, 공부가 느리거나 행실이 거친 아이들에겐 달랐다.
그에게 그들은 늘 ‘문제아’였다. “쟤는 답이 없어. 인성이 안 됐어.”그 말 한마디로 아이의 가능성은 닫혔다.
교무실 한편에서 그가 말하는 걸 들을 때면 나는 가끔 숨이 막혔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말 한마디에도 반응이 빠르다니까요. 걔네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거예요.”
그 말속엔 믿음이 아니라, 선 긋는 냉정함이 있었다.
수업에 대한 열정은 의외로 없었다.
그는 늘 말했다.
“나는 학생 주도형 수업을 지향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의 수업 시간은 늘 자율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질문 있으면 물어봐.”
그게 수업의 전부였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수포자들에게 질문이 있을 리 없었다.
교실은 조용했고, 그는 그 침묵을 ‘자율성’이라 불렀다.
그걸 보며 나는 자주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자율이 아니라 방치 아닌가.’
업무에서도 그는 한결같았다.
힘든 일은 후배 교사들에게 시켰다.
보고서, 행사 준비, 수업자료 정리…그리고 마지막엔 늘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다 같이 한 거예요.”
그 ‘다 같이’엔 이상하게 늘 본인 이름이 제일 먼저 올라갔다.
그는 일보다 ‘공로의 위치’를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결과만 남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했는지보다, 누가 보였는지가 중요하잖아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불편할 뿐이었다.
그에게도 ‘자기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박경선 선생님이었다.
그는 박경선 선생님을 유난히 챙겼다.
함께 밥을 먹고, 의견을 나누고, 회의 때마다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닮는 걸까, 배우는 걸까.’
요즘 들어 박경선 선생님의 말투도, 그의 냉정한 계산법도 묘하게 닮아가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는 교사였지만, 교사의 본질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 지보다누가 더 잘 보이는지가 중요했다.
그는 늘 말했다.
“학교는 사람 사이 싸움이에요. 그걸 모르면 버텨낼 수가 없어요.”
그 말이 맞다는 걸, 나는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었다.
퇴근길,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번진 교무실 불빛이 물 위의 반짝임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도 누군가는 계산을 끝내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하겠지. 누군가는 이득을 세고, 누군가는 손해를 견디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계산 속에서 나는 아직도 ‘정직한 손해’를 택하고 싶었다.
“이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외로워진다.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을 남기는 쪽이 좋다. 나는 오늘도 그 계산을 포기하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