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누가 더 오래 일했고, 누가 교감의 신임을 받으며, 누가 더 ‘능력 있는 교사’로 불리는지.
그 질서를 누구보다 철저히 믿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감도 내 밑에 있는 목소리만 크면 된다는 사람.
홍지혁 선생님,
퇴직을 4년 앞둔 국어 교사다.
그는 국어보다 서열을 더 잘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늘 말했다.
“성적이 인생의 얼굴이다.”
아이들이 대답이 느리면,
“이래서 공부 못 하는 애들은 문제야.”
그 말은 칼처럼 아이들의 자존심을 날카로운 칼날같이 베었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손을 들면
“역시 너는 다르다.”
못하는 아이가 손을 들면
“가만히 있어. 너는 아직 멀었어.”
그런 수업을 매일 들으며 아이들은 배웠다. 사람의 가치는 등수로 매겨진다는 걸.
교무실에서도 그는 비슷했다.
기분이 좋을 땐 모든 농담이 허용되고, 기분이 나쁘면 평소에 했던 말도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른다.
도움을 요청하면
“그런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본인의 일은 언제나 내게로 왔다.
“미주샘, 이거 좀 대신해줘요. 나는 이런 거딱 싫어하는 거 알지? “
본인의 일은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야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일을 도와주는 걸 보면, 꼭 이런 말을 했다.
“괜히 나섰다가 욕먹지 마. 학교는 그런 거 몰라줘.”
그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경고였다.
‘남의 일에 끼지 말라’는. 한 번은 그가 내게 말했다.
“미주샘,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눈치 빠른 사람이 이겨.”
그 말에 웃지 못했다. 너무 솔직해서, 너무 슬펐다.
그는 늘 계산이 빨랐다. 누가 칭찬받는지, 누가 교감의 눈에 들었는지, 누가 다음 승진 대상인지. 그런 건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리고 그가 싫어하는 사람은 딱 한 종류였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
그럴 땐 표정이 굳고, 말이 짧아졌다.
“요즘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그 말은 학생에게도, 동료에게도 똑같이 향했다.
학생들에게는 소리쳤고, 동료들에게는 침묵으로 압박했다.
그의 말보다 무서운 건, 그의 ‘말하지 않음’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행사 준비로 정신없던 어느 날, 그가 조용히 말했다.
“미주샘, 나한테 부탁한 거 있지? 그거 안 할래.”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그냥 ‘기분이 나쁘니까.’ 그게 이유였다.
며칠 뒤, 다시 찾아와 말했다.
“요즘 나한테 왜 그렇게 말이 없어?”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건 대화가 아니라 복종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존경했었다.
그가 교단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교사란 저런 사람이구나’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됐다.
그가 사랑한 건 학생이 아니라, 학생 위의 권위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존경은 미움으로 바뀌었다.
조용하지만, 돌이킬 수 없게. 하지만 동시에 그를 보며 배웠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학생들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상처 주지 말아야지. 도와달라며 이용하지 말아야지. 교사라는 이름으로 갑질하지 말아야지.
그가 보여준 건 나쁜 본보기였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퇴근길, 하늘은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내릴 듯,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펼치기도 전에 옷깃이 젖었다.
노을보다 비가 더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따뜻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회색빛 오후. 공기엔 흙냄새와 철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빗줄기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스쳤다.
그 바람이,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곳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같은 얼굴, 같은 말, 같은 하루.”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또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다르지 않은 날을 버텨내기 위해. 비가 축축이 내리는 저녁,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젖어들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그저 묵묵히, 오늘의 피로처럼.
“가르침은 서열이 아니다. 성적보다 중요한 건, 학생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