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다시 평온한 얼굴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 나는 자주 피로를 느꼈다.
조용한 교무실에서도, 사람 사이엔 여전히 묵은 공기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권혁수 선생님. 퇴직을 반년 앞둔 체육 교사.
그는 늘 말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잖아?”
그 말이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나를, 그리고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학교 시스템이 전자화되면서, 출석부도, 성적도, 결재도 컴퓨터로 처리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 자리를 찾아왔..아니 전화를 하셨다.
“미주샘, 나 이거 좀 해줘. 나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딱 아파와.”
“이건 선생님이 직접 하셔야 해요.”
“그럼 내 자리 와서 좀 해주면 되잖아.”
그 말투엔 미안함보다 귀찮음이 앞섰다.
그의 ‘모름’은 단순한 한계가 아니라 책임을 피하는 방식이었다.
일이 생기면 ‘몰라서 못 한다’
문제가 생기면 ‘몰라서 그랬다’.
그에게 ‘모름’은 방패였고, 그 방패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아이들 앞에서도 그 방패는 여전했다.
학생이 질문하면
“몰라, 그런 건 선생님한테 묻지 마.”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
“버릇없다” 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쉬는 시간, 한 학생이 친구에게 욕을 했다. 그런데 그걸 본 권혁수 선생님은 그 욕이
자기한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교무실로 들어와 말했다.
“인간 말종 같은 새끼! 교권침해야! 나 이틀은 못 나오겠다!”
그는 정말로 이틀 동안 병가를 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요즘 애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 말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말이 너무 거칠고, 배려가 부족하다. 나 역시 그걸 감싸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걸 바로잡는 게 교사의 역할 아닌가.
그는 학생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쏟았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실수라도 하면
“너 같은 애는 사회 나가면 아무것도 못 해.”그 말은 훈육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아이들은 그를 피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숙였고, 그의 발소리가 들리면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그걸 ‘존경’이라 착각했다.
그가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그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이제 곧 나가실 분인데 굳이 말을 해서 뭐 해.”
그 말이 그를 더 무책임하게 만들었다.
그의 수업을 대신 준비하던 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배울 생각이 없는 건 죄보다 나쁘다.’
교사라고 완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들을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한다.
잘못된 건 알려주고, 거친 말은 다듬어주고, 그게 교육이다.
그는 그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서 있는 현실이,
나는 참 아팠다.
퇴근길, 교문을 나서며 운동장을 봤다.
아이들이 공을 차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오래 이어지길 바랐다.
그들이 다시는 그런 어른을 닮지 않기를, 그게 오늘 내가 학교를 버티는 이유였다.
“교사는 아이를 꾸짖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꾸짖음이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권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