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모르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 조민정 편

by 기억너머

조민영 선생님은 경력 20년 차 도덕 교사다. 선생님은 늘 말했다.

“내가 잘 몰라서요.”

그 말은 이제 거의 구호처럼 들린다.

아침 인사 대신, 하루의 시작이 되는 주문 같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지,

누구나 처음부터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까. 학교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행정은 매년 바뀌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분이 진짜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20년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그는 공문을 하나 보낼 때마다 내 자리를 찾아왔다.

“미주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 작년에 하셨잖아요.”

“그랬나? 내가 잘 몰라서~”

그 대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화가 나기도 전에 허탈해졌다.

그렇게 그 선생님은 ‘모르쇠의 기술’로 20년을 살아왔다.

어쩌면, 그건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공문, 품의, 예산 집행, 결재라인 정리, 행사보고… 그가 모르는 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받을 돈’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학교는 늘 분주해진다.

정산, 수당, 회계 마감…

그때마다 조민영 선생님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거 내 수당은 왜 안 나왔어요?”

“작년에는 나왔는데 이번에는 왜 빠졌지?”그럴 땐, 목소리 톤도 달라졌다.

단호하고 정확했다.

웃음이 나왔다.‘

모르던 사람 맞나?’

공문 하나 보낼 땐 열 번을 물어보던 분이

돈 얘기만 나오면 회계 프로그램의 천재가 된다.

그 순간만큼은 손도 빠르고, 기억력도 완벽했다.

이것은 빛의 속도였다.

그의 남편은 같은 재단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

그도 꽤 독특하다.

아내가 어려워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통해 해결됐다.

“미주샘~ 우리 조 선생 일 좀 부탁 좀

하네요. “

그 부탁이란 건 늘 사적인 일이었다.

가구 결제부터, 아들 문제집 주문, 심지어 중학생 아들의 하원까지. 처음엔

‘아, 급하니까 도와드려야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한 번, 두 번, 세 번이 되자, 나는 어느새 ‘조민영 선생님 집안의 비공식 비서’가 되어 있었다.

한 번은 그가 내게 말했다.

“미주샘, 내가 이런 부탁을 하면 좀 미안해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미주샘이 제일 잘하잖아~”

그건 사과가 아니라, 미끼였다.

어느 날,

나는 내 자리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주샘, 행사 예산 서류 어떻게 보는 거야? 그거, 내가 잘 몰라서~”

그날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정말 모를까?’

20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해온 사람이 아직도 모른다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모르는 게 아니라,

‘알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누군가 대신해줄 테니까.

학교에서 경력은 곧 면허증이다.

무능도 오래되면 관록이 되고, 모르는 것도 오래 반복되면 면죄부가 된다.

조 선생님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남았다.

퇴근 직전, 또 그가 내 자리에 왔다.

“미주샘~ 내일 회의자료 좀 출력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잘 몰라서.”

그 말을 들으며 프린터를 켰다.

이제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은 피곤한 하루의 결말이자, 이 조직의 현실을 담은 표정 같았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닐지 몰라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 죄보다 교묘하다.’

그가 남긴 건 서류도, 감사 인사도 아니었다. 오직 내 하루의 피로였다.

“그는 늘 ‘모르니까’ 용서받았다.

하지만 나는 ‘알아서’ 더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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