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아무 일도 없던 듯

by 기억너머

아침 7시 40분, 교문 앞을 지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행사도 끝났으니 이제 좀 한가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빈속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익숙한 형광등 불빛이 켜지고, 구겨진 출석부가 나를 반겼다.

의자에 앉아 안경을 고쳐 쓰고, 오늘도 하루를 버틸 준비를 했다.

컴퓨터를 켜자 새로 도착한 공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행사 정산 보고,” “학부모 상담 일정,” “생활기록부 수정.”어제까진 ‘행사만 끝나면 좀 쉬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더 정신이 없었다. 커피는 식었고, 머리는 더 무거워졌다.

수업 준비를 하며 자료를 인쇄했다.

프린터는 언제나처럼 삐걱거렸고, 잉크 냄새가 교무실 한쪽에 퍼졌다. 창밖엔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녔다.

잠깐, 그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늘 제시간에 자리를 채우고,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오늘은 뭐 해요?”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피로를 녹였다.

점심시간, 급식실은 여전히 북적였다. 학생들의 웃음소리, 쟁반 부딪히는 소리, 바닥을 스치는 신발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섞여드는 선생님들의 대화. 누군가는 아이 성적을 자랑하고, 누군가는 새로 산 옷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애는 이번에 담임이 너무 좋대.”

“아, 그 옷 지난주에도 입었잖아요~”

웃음이 터졌고, 나는 그 웃음 사이에서 조용히 밥을 삼켰다. 음식의 온도는 따뜻했지만, 마음은 조금 식은 듯했다. 그냥, 하루가 흘러가는 소리 같았다.

급식 트레이를 반납하고 교무실로 돌아오는 길, 복도 끝에서 교장이 마주 걸어왔다.

“미주샘, 요즘 고생 많죠?”

익숙한 인사였지만, 그날따라 공기의 결이 달랐다.

그의 손끝이 스치듯 내 어깨를 지나갔다.

닿았다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모른 척하기엔 너무 분명했다.

순간, 웃어야 하나 망설였다. 몸이 먼저 굳었고, 웃음은 입가에서 멈췄다.

그의 시선이 어깨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위로 올랐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가 먼저 피하지 않았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동안, 마음 한편이 조용히 얼어붙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갔다.

복도엔 여전히 급식 냄새가 떠다녔지만, 그 냄새 속에 이상한 온도가 섞여 있었다.

마치 방금 지나간 공기만이 다른 계절처럼 차가웠다.

교무실로 돌아오자 프린터 소리, 전화벨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가 다시 쏟아졌다.

누군가는 담임 일지 마감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서류봉투를 묵직하게 내려놓았다. 그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들.

“이번에 미주샘 진짜 고생했대.”

“일하는 거 좋아하잖아~”

농담처럼 섞인 말들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오후 수업은 무난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밝았고, 나는 여전히 분필을 쥐었다.

“선생님, 오늘 하늘 예뻐요.”

창문 밖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이들이 웃으면, 나도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일에 치이는 교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살짝 밝혀주는 사람으로.

퇴근 무렵, 책상 위에 쌓인 공문들을 한 번 더 훑어봤다.

‘내일로 미루기’ 버튼을 누르며 커피잔을 비웠다.

창문 사이로 노을빛이 길게 들어왔다.

교무실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그 소음 속에서 나만 조용했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