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친절은 체력이다

by 기억너머

행사가 끝난 뒤, 학교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체육관은 이제 문이 굳게 닫혀 있고, 벽면의 현수막 자리는 허전한 테이프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침 7시 30분, 이른 출근으로 조용한 학교를 느끼고 싶었을까?

텅 빈 학교에서 학교의 냄새, 바람의 냄새, 분주했던 마음을 다 잡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작되는구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프린트된 학습지를 들고 교무실을 오갔다.

며칠 전 그 소란스러움과 열기는 꿈처럼 사라졌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열어본다.

공문함엔 내가 처리해야 할 새로운 공문이 쌓여 있다.

행사 뒤처리를 위한 감사도, 수고했다는 말도 없었다.

그냥, 또 다른 업무가 시작될 뿐이었다.

‘다음 주에는 학부모 상담 일정 올려야 하고, 가정통신문도 만들어야 하네?’

그저 오늘의 일상이 시작되는 거다. 섭섭함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행사보다 더 피곤한 건 그 뒤에 밀려드는 일상의 무게였다.

그때 교감이 복도를 지나며 말했다.

“경선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번 행사, 완벽했어요. 학부모 반응이 아주 좋더라고요.”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아, 이제는 이 대사도 지겨워질 지경이구나.’

그 뒤로 몇몇 선생님들이 수군거렸다.

“경선샘은 진짜 일을 열심히 하네.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았다며?”그 말들이 공기처럼 떠다녔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억울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을 꺼내 쓰는 일이 이미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예의를 지키는 일, 그게 바로 이곳의 생존법이었다.

‘친절은 체력이다.’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점심시간, 교무실 한쪽에서 경선샘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곁엔 늘 그렇듯 교감이 있었다.

“괜찮아요,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이번에 혼자 준비한다고 너무 마음 써서 그래. ”

그 말이 이상하게 귓가에 남았다. 그러다 또 생각했다.‘그래도, 이제 이런 일로 상처받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수업 준비를 했다. 교무실의 공기는 무겁고, 형광등은 괜히 더 밝았다.

하지만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게 조금은 달라졌다.

“선생님~ 오늘은 뭐 해요?”“어제 그거 했던 거 재밌었어요!”아이들의 밝은 얼굴이 묘하게 나를 가볍게 했다. 교무실의 피로가 천천히 녹았다.

칠판 앞에서 분필을 들 때,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일에 치이는 교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웃을 때마다나의 에너지가 충전됐다. 내가 내준 작은 친절이, 되돌아와 나를 살리는 순간이었다.

퇴근길, 운동장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어제의 노을보다 색이 옅었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오늘의 색으로 충분해.’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내일도, 나는 또 웃을 거다.

나도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다시, 내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