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리뷰
현대의 고전인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은 뒤로 역사적인 여성 작가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그 관심을 이어갈 만한 기회가 계속 이어졌는데, 예를 들면 허밍버드 출판사의 또 다른 일러스트 레터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온 편지> 같은 책의 문화초대였다. 세 자매가 모두 작가였던 브론테 자매의 편지를 한데 모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가 궁금해진 것 역시 당연지사였다.
유명 예술가의 생전 편지와 기록을 망라해 한 권의 책으로 엮고 독자가 쉽게 시대상을 이해하도록 수많은 삽화를 넣은 허밍버드 출판사의 ‘일러스트 레터 시리즈’는 반 고흐와 제인 오스틴에 이어 브론테 자매의 생을 다뤘다.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는 브론테 자매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특한 가정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자매의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작가들이 쓴 편지가 실린 비중은 이 시리즈의 전작인 제인 오스틴 일러스트 레터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샬럿 브론테 평전, 자매들의 가족과 지인의 편지, 세 자매의 일기 및 기록, 브론테가 사람들이 그린 그림 등을 더욱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어 세 작가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했다.
브론테 자매 일러스트 레터의 경우 동시대 작가이자 자매 중 큰언니 샬럿 브론테의 절친한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집필한 샬럿 브론테 평전과 샬럿이 생전 친구, 지인들과 남긴 편지가 주요 자료가 되었다. 샬럿 브론테는 브론테가의 6남매 중 성인까지 자란 4남매 중에서도 가장 맏이였으며, 브론테가의 자녀 중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세 자매 중에서 가장 사교적이어서 그가 남긴 편지도 다른 자매들에 비해 많았다. 무엇보다 사후 가까운 시기에, 친우의 손으로 쓰인 신뢰성 높은 평전이 샬럿 브론테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세 자매의 삶은 큰언니 샬럿의 자료에 기대어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
브론테가 일원 중에서 이 성을 처음 쓰고 아일랜드 농부 집안에서 성직자로 계층 이동을 하여 새로운 가정의 기반을 닦은 이는 가장인 패트릭 브론테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패트릭 브론테는 대학에 진학해 고전과 신학을 배웠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마리아 브랜웰과 결혼하여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그러나 병환으로 마리아 브랜웰이 사망하면서 자녀들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모인 엘리자베스 브랜웰(브랜웰 이모)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여섯 명의 자녀들을 아내 없이 부양해야 했던 패트릭 브론테는 코완브리지 기숙 학교에 네 자매를 보냈다. 그러나 가난한 성직자의 자식들이 주로 학생으로 갔던 코완브리지는 아이들에게 가혹하고 열악한 곳이었고 그곳에서 브론테 가족은 장녀 마리아와 차녀 엘리자베스를 폐결핵으로 잃게 된다. 졸지에 딸 둘을 잃은 패트릭은 다급하게 샬럿과 에밀리를 집으로 데려왔고, 코완브리지에서의 경험은 샬럿이 쓴 명작 <제인 에어> 속 로우드 학교의 창조에 반영되었다.
하워스의 목사관으로 돌아온 샬럿과 에밀리는 브랜웰(장남 패트릭 브랜웰 브론테) 그리고 앤과 더욱 똘똘 뭉치게 되었다. 브론테가의 네 아이들은 집인 목사관에서 산수, 고전, 그림 등을 배웠고 자기들만의 이야기 왕국을 건설하며 자기들만의 필사본을 만들며 놀았다. 지어내기(making out)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와 글의 유희는 꽤 진지하고 방대한 것으로, 현실 정치와 지명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각계각층의 인물이 그들 상상의 왕국에 존재했다. 그들이 만든 필사본과 모조 신문, 소식지 등을 합치면 그 분량이 후일 작가가 된 세 자매가 출판한 시와 소설의 분량보다 훨씬 많을 정도였다. 영국 하워스의 목사관과 황야에서 자라난 브론테가의 아이들은 그들이 속한 젠트리 계급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가난했다. 그렇다고 농가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기엔 교육 수준이 너무 높았다. 그렇게 네 남매는 목사관 돌담 벽의 안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며 놀았고 유대를 쌓았다. 이런 브론테가 아이들의 ‘관습’은 성인이 된 에밀리와 앤이 4년에 한 번씩 일기 소식지를 만든 것, 어릴 적 지은 왕국의 이야기가 에밀리의 운문의 재료가 된 것 등으로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도 긴밀하게 이어졌다.
브론테가의 재정 상황은 좋지 못했다. 가장 패트릭 브론테는 가난한 목사였고 그의 얼마 안 되는 연봉은 여러 명의 자식을 부양하는 데에 쓰였으며 제대로 된 저축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그렇다고 집안에 다른 재정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 패트릭이 쓰러지거나 사망하면 언제든지 바로 궁핍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살아남은 네 남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려받을 수 있는 직업이나 재물이 없는 남매는 각자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들 남매는 모두 사회를 헤쳐 나가는 힘이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p. 144) 세 자매의 경우 기숙 학교의 교사, 가정 교사 일을 했다. 당시 가정 교사(governess)는 존경받는 선생님보다는 고용주 자녀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시중을 드는 자리였고 심한 고립감을 느끼기 좋은 직업이었다. 하녀나 요리사는 고용주의 집안에 여러 명이 있을 테지만 가정 교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샬럿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정 교사 일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가정 교사는 존재감이 없는 데다, 교사로서 수행하는 힘겨운 임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살아 있고 이성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알게 되었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기쁘게 해 주는 동안은 괜찮아. 하지만 잠시라도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들면 바로 쓸모없는 인간이 돼 버리지.' (p. 152)
세 자매 중 가장 황야와 자유를 사랑했던 에밀리는 ‘노예 같은’ 업무량을 담당하던 학교 교사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자매 중 가장 아이들을 좋아하고 금욕적인 성격이었던 앤이 가정 교사 일을 제일 잘 버틴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역시 이 일의 고충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을 들고 끌어와야 했고 수업 내내 붙들고 있기도 해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고달팠다는 이야기이다.
가정 교사가 일의 보람이 없고 고립감은 심하다는 점 외에도 세 자매를 힘들게 한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작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이었다. 샬럿은 가정 형편 탓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경제적 대책이 자신의 욕구 및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데서 좌절감을 느꼈다.(p. 142) 그 좌절감은 계관 시인 로버트 사우디의 조언에 대한 샬럿의 심란하고 모순적인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샬럿은 로버트 사우디에게 자신의 시를 여러 편 묶어 조심스럽게 편지를 보냈으나, 사우디는 문학가의 삶은 여성의 ‘직분’이 아니라며 샬럿에게 문학에 시간을 쓰지 말라는 답을 해왔다. ‘문학은 여성에게 필생의 사업일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우디가 말한 여성의 직분이란 바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이에 집안이 가난해 생계를 직접 꾸려야 했고 결혼에 큰 뜻이 없었던 샬럿은 가정 교사의 직분에 순응하려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교사가 되는 것이 내 직분이라고……생각했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상상 같은 것을 하지 않도록 온종일 내 생각을, 그리고 머리와 손을 지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솔직히 매일 저녁이면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하지만 내 상상 때문에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 적은 결코 없었다. 나는 어디에 몰두해 있거나 정도를 벗어난 모습이 드러나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했다…… 나는 여성이 해야만 하는 모든 의무를 엄숙하게 수행하는 동시에 그런 일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늘 성공하는 건 아니라 차라리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도 나 자신을 부정하려 노력했다…… 내 이름이 인쇄되는 걸 보고 싶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이런 소망이 끓어오르면 사우디 씨의 편지를 보며 억누를 것이다.' (p. 143)
그러나 샬럿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영혼은 쉽게 잘려나가지 않았다. 글쓰기는 샬럿의 평생에 필수적인 일이었다. 샬럿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 삶의 중심이었던 것은 에밀리와 앤도 마찬가지였다. 세 자매의 이러한 내면적 갈등은 자기들의 학교를 세우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브론테 남매를 양육해 온 브랜웰 이모가 학교를 세우는 자금에 투자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힘입어 샬럿과 에밀리는 자기들 학교만의 강점을 키우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 머물며 수학한 곳이 에제 부인의 기숙 학교였는데, 여기서 샬럿은 에제 부인의 남편인 콩스탕탱 에제에게 반하고 말았다. 브랜웰 이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고향 하워스로 돌아가 정착한 에밀리와 달리 샬럿은 에제 씨가 있는 브뤼셀로 돌아와 에제 학교의 영어 교사로 취직했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심한 고독감과 자기 감정에 대한 에제 씨의 냉담함 등을 이기지 못해 샬럿 역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에제 씨에게 마음을 숨기지 않는 편지를 계속 보내는데 그 내용을 읽고 있으면 한 인간으로서 샬럿 브론테가 애잔해지기도 한다.
브론테 자매의 학교 설립 계획은 수강생이 생각보다 모이지 않으며 좌절되었다. 가족을 부양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받던 장남 브랜웰은 자기 몫을 하기는 커녕 추문을 일으켰으며 성격이 괴팍해졌고 가족들의 기대를 깨트렸다. 브론테 가의 자녀들은 불확실하고 암울한 미래에 잠겨가는 것으로 보였다.
삶의 변곡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우연히 에밀리의 운문들을 읽게 된 언니 샬럿이 동생의 시에서 전율을 느낀 것이다. 샬럿은 이 시들을 출판해야 세상에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세 자매는 각자 시를 약 스무 편씩 모아 시집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경력 없는 무명작가들의 첫 출판은 쉽지 않았다. 출판사마다 퇴짜를 맞다가 마침내 한 출판사에서 자비 출판의 조건으로 시집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제목은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이었다. 여성 작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피함은 물론 자신들의 신원을 알리고 싶지 않아 중성적인 이름으로 가명을 지은 것이다. 다만 커러 벨, 엘리스 벨, 그리고 액턴 벨 이 세 사람이 혈연관계인 것은 밝혀서 출판했다. 시집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초판 인쇄본으로 추정되는 1,000부 중 달랑 두 권이 팔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세 곳에서나마 평을 받을 수 있었고, 여기서 에밀리의 시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어찌 보면 낙담하기 쉬운 결과였으나 자매들은 바로 다음 소설집 출판을 구상했다. 샬럿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실패는 우리를 깨부수지 못했다…… 성공하려는 노력만으로도 훌륭한 자극이 되었고, 이는 계속되어야만 했다……’(p. 213)
그들이 구상한 ‘소설 작품집’의 구성은 샬럿의 <교수>, 에밀리가 쓴 <폭풍의 언덕>, 그리고 앤의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였다.(p. 214) 에밀리와 앤의 작품은 반응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샬럿의 <교수>는 그렇지 못했는데, 3부작 소설을 써 보면 좋을 거라는 한 출판사 관계자의 평에 샬럿은 <제인 에어>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드디어 그 유명한 작품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제인 에어》는 고아인 제인의 교육과 윤리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그녀는 한 집에서 다른 집, 인생의 다음 단계로 옮겨 갈 때마다 비열한 잔혹성, 속물근성, 위선 등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맞서 싸운다. 거만하고 수수께끼 같은 로체스터 씨와의 사랑 이야기도 들어 있는데, 그가 불구가 되어 두 사람이 동등한 위치가 되고 나서야 제인은 마침내 그와 결혼하게 된다. (p. 219)
<제인 에어>는 출간 즉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다른 출판사에서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를 한 권으로 엮어 얼른 출판했다. 그래서 오자가 많은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어쨌든 그 명작들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제인 에어>는 호평을 많이 받았고, 칭찬 일색이 아닌 서평들조차 이 작품의 탁월함을 인정했으며, <제인 에어>가 앞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을 예상했다.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지금으로 따지면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을 얻었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비판하는 평들에 마음을 다쳤던 것으로 보인다.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 또한 출판계의 평을 이끌어냈다. 찬사를 받기도 하고 비평을 받기도 했으나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브론테 자매들은 명실공히 널리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이제 더 이상 가정 교사 일을 알아보거나 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브론테 자매의 창작욕이 첫 번째 시집의 판매 성적에 좌우되었다면 우리는 이 세 작품과 그 이후 자매의 뛰어난 차기작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세 자매의 창착의 불꽃이 강인했던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후대의 독자가 말을 더할 필요도 없이 애초부터 그 불꽃은 그들의 생명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브론테 자매의 이 이야기에서 나는 삶의 변화가 결국 의지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슬프게도 자매들은 작가의 생을 오래 살지 못했다. 그들의 작품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으나 브론테가 자녀들 중 가장 오래 산 샬럿이 서른여덟에 죽었으니 말이다. 브랜웰이 그 가능성 많았던 젊은 삶을 제일 먼저 떠나버렸다. 약 4개월 뒤에 에밀리가 생을 마감했다. 폐결핵이었다. 에밀리에 이어 앤도 폐결핵을 앓게 되었다. 샬럿은 앤의 장례를 치르며 이제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곤 자신뿐임을 절감했다.
자유를 느끼던 황야에서 형제자매들의 흔적을 보며 슬픔에 빠진 샬럿은 강렬한 외로움을 이겨 내기 위해 소설 집필을 재개했다. 샬럿은 글쓰기에 치유의 힘이 있음을 인정했고, 그 재능으로 형제들이 떠난 세상을 버티게 해 준 신께 감사드렸다. 두 번째 저작 <셜리>는 그런 상황에서 나왔다.
로맨스가 담긴 <제인 에어>의 경우 당시 저속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샬럿은 이에 차기작의 주제를 달리 잡았다. <셜리>는 내용 면에서는 여성 캐릭터들과 방적 공장의 노동자들을 비슷한 억압의 대상으로 연관시켰고, 노동과 산업이라는 남성적 영역과 자연과 감정이라는 여성적 영역 사이의 대립을 탐구했다.(p. 263) 이러한 남성적, 여성적 영역의 구분은 지금으로서는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세태를 비판하려는 작가 샬럿에게는 엄연한 현실이었고 뜨거운 감자였을 것이다. 샬럿의 두 번째 작품 <셜리>는 사회비판적인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샬럿은 사회의 구조를 첨예하게 파악하고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인 에어>에 반영되어 인물의 성격, 내력, 세상을 구성했던 개인적 경험은 이제 더 큰 사회를 분석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여성들에게 부과된 역할은 ‘사물의 뒤틀린 제도’를 만들어 그들의 지적 능력과 일치하지 않고 대로는-브론테 자매들의 경우는 특히-그들의 경제적 필요도 채워주지 못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영속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 정력을 적절히 분출할 데가 없는 중산층 미혼 여성은 사회에 설 자리가 없어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질문도, 항변도 하지 못하고……’ (전갈과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손에 꼭 쥔 채 침으로 자기 손바닥을 찔러야 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결혼해서 남편을 섬기거거나 가정 교사로 일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제도는 노동자들이 정치, 사회, 경제 세력에 의한 피해자이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인정하지 않았다. (pp. 264-266)
그다음 작품이자 브뤼셀 유학 경험을 담은 소설 <빌레트> 역시 발간되자마자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샬럿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샬럿의 형제자매를 앗아간 폐결핵이 그 역시 무너트린 것이다. 죽기 약 9개월 전 부부의 연을 맺은 부목사 아서 벨 니콜스가 샬럿의 절친한 친구 엘런 너시에게 샬럿의 부고를 보냈다. 브론테가의 자녀들 중 슬하에 자식을 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샬럿의 유언대로 사위 아서 벨 니콜스가 자식들을 모두 잃은 장인 패트릭 브론테의 말년을 보살폈다.
샬럿 브론테 평전의 일부, 샬럿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에밀리와 앤이 4년에 한 번씩 만들던 일기 소식지, 자매들이 각자 한 기록과 그들의 시와 소설 일부 인용문, 그리고 당대의 풍경을 담은 풍부한 도판 자료와 함께 브론테 자매의 생을 일목요연하게 읽어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고립되고 유대감이 끈끈했던 가정환경과 그것이 브론테 자매의 작품세계에 미친 영향을 알게 된 만큼 앞으로 자매의 작품을 읽게 될 때 더 깊은 감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어떤 부분은 더 잘 이해되기 시작했다. 본 글의 서두에 언급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속 두 공간적 배경을 ‘뒤집힌 천국과 지옥의 위계’ 구조로 해석하고, 그에 기반하여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심리를 설명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성격은 세 자매 중 가장 19세기형 천재 예술가 같았다. 고독을 즐겼고 집단과 규율 안에 매이면 생명력을 잃어갔으며 황야를 사랑했다. 이 책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통해 에밀리의 성격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니 <폭풍의 언덕>에서 황야의 언쇼가(家)가 차라리 천국 같은 지옥이고, 여주인공 캐서린이 그 반대편에 있는 스러시크로스라는 정돈된 천국으로 ‘추락’한다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저자들의 해석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다.
아직 샬럿 브론테의 <셜리>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일러스트 레터에서 얻은 배경지식들을 활용하여 <셜리>의 구조를 분석해 읽어나간다면 더 풍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이처럼 브론테 자매 작품을 사랑하거나, 작품에 대해 알아가고 싶거나, 이런 작품들을 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궁금한 사람에게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책을 펼친다면 세 자매의 창작의 불씨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하워스의 황야에서 그들이 어떤 영감을 주고받았는지, 마침내 황야 위에서 피어난 창작의 불꽃이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속속들이 알아갈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