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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플지기 Apr 18. 2022

우리 아이가 장사를 하겠답니다

변화하는 세계, 무얼 가르쳐야 하나

안녕하세요, 전국 10만 명 자영업자분들의 멘토로 활동 중인 주식회사 창플 한범구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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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그렇게 고생하셔 놓고, 따님에게 그걸 또 똑같이 반복시키실 건가요?


내 자식이 장사를 하겠다는데

초보 창업자들이 주로 찾아오는 창플 상담실에 하루는 베테랑이 찾아오셨다. 30년 이상 장사를 하면서 안 해본 업종이 없을 정도로 산전수전을 다 겪고도 살아남아 환갑이 넘은 나이에 현역으로 장사를 하는 분이셨다. 이런 분이 왜 새파란 후배인 창플지기에게 돈을 내고 상담받으러 오셨을까? 이 분 세대의 ‘아버지’들은 어디 가서 상담받는 일이 좀처럼 없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그저 버티는 게 다인 답답한 한국의 아버지들. 그런 분이 용기를 내어 찾아오신 터라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그가 창플지기를 찾아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때문이었다.


“딸아이가 조리학과를 나왔어요. 요리사가 되려는가 보다 싶었는데, 얘가 장사를 하고 싶다네? 아 이거 참….”

아버님은 현재 가게를 여러 곳 운영하고 계시는 데 얼마 전에도 좋은 자리를 인수해 파전에 막걸리 파는 가게를 오픈을 하셨다고 한다. 딸이 장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님의 머릿속에는 그려지는 그림은 딱 그거였다. 파전에 막걸리집. 툭하면 아저씨들끼리 술 취해서 시비 붙고 유세 떠는 풍경에 모둠전 2만 원짜리 메뉴 3개만 한꺼번에 들어와도 어수선해지는 파전집 주방. 그 시끌벅적한 전쟁터에 딸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버지는 고만 정신이 다 아찔해지는 것이었다.


“혹시, 막국수의 고수를 아시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막국수요? 아, 네… 봉평에 아는 막국수 명인이 계시긴 한데….”

난감해진 아버님께서 수를 내신 것이 막국수였던 것이다. 물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생각, 바로 그것이었다. ㅡ 막국수를 배워서 전집 대신시키면 어떨까, 술장사는 고생스럽고, 험한 일이니까. 내가 해도 힘든데 우리 애가 이걸 어떻게 하겠어. 술 말고 밥을 팔아야 하는데 내가 국수를 해봤으니까 그 정도는 도울 수 있을 거야. 국수란 것이 이것저것 종류가 많으니 하나의 메뉴로 가는 게 일이 좀 수월하겠지. 하나의 전문점으로 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막국수…. 그래, 수십 년 전통으로 하는 곳도 많고 자리 잡으면 평생 먹고 살 수도 있을 거야. 국숫집은 기껏해야 단가가3,000~4,000원인데 막국수는 그래도 8천 원은 받잖아. 사람이 많이 와도 메뉴가 한 가지라 그 정도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자리 잡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5년이든 10년이든 내가 옆에서 지원해 주면 돼. 가게 하나만 자리 잡아도 먹고사는 건 문제가 없으니까.


그래, 막국수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지만 아버님의 생각을 듣고 솔직히 기가 막혔다.

“그럼, 그 막국수 얘기를 따님에게 해보셨어요?”

“아니요.”

“따님은 뭘 하고 싶다고 해요?”

“뭐, 커피나 샌드위치 같은 걸 팔겠다고.”

아마도 따님은 브런치나 디저트 카페를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안 되겠다 싶어 아버님께 단호히 말씀드렸다.

“사장님, 따님의 꿈이 뭔지 아세요? 왜 커피숍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아세요? 사장님 하루 몇 시간 일하세요? 만약에 장사가 안 되거나 혹은 잘되면 어떡하실 건가요? 따님도 사장님처럼 온종일 일하게 하시려고요? 지난 30년 동안 그렇게 고생하셔 놓고, 따님에게 그걸 또 똑같이 반복시키실 건가요?”


근면과 성실만으로도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정말 ‘뼈가 빠지도록’ 수고했다. 그러나 시절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아버지들이 과거의 가치와 시각을 고수한 채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그렇게 자신들의 좁은 세계관을 주입시켜서 똑같이 고생스러운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도대체 뭣이 중헌디

살면서 10시간이나 15시간을 일할 수도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순간들은 매 순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현듯 떠오르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삶은 지속될 수 없다. ㅡ’ 내가 오늘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월 1000만 원을 벌어도 공허하고,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삶의 목표가 없이 장사나 사업을 하게 되면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장사를 잘하는 엔지니어가 될 뿐 진정한 안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장사의 기술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장사의 기술자들의 말로는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게 되면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대단한 요리기술이 있어서 호텔에 취직하면 당장 돈은 벌겠지만 IMF 같은 경제 위기가 닥치면 하루아침에 호텔 문을 닫으면서 그 인생도 함께 멈춘다.


대단한 장사 기술을 가졌다며 내가 손을 대면 절대 망할 일이 없다던 사람들도 요즘의 변화 속에서는 별안간 놀랠 일이 많다. ‘왜 갑자기 장사가 안 되지?’ 근래에 창플을 찾는 이들 중에는 유독 10년 이상의 경험치가 있는 베테랑들의 수가 늘은 것이 눈에 띈다. 창업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린 탓이다. 보이지 않는 상권의 변화로 예전에는 동네에서 장사 잘하시던 분들이 HMR로 고객을 빼앗기고, 배달로, SNS로 고객을 빼앗겼다. 온라인상으로는 내 가게 간판이 다른 집 간판에 가려져 있는데도 가게가 왜 안되는지 영문을 모르는 사장님들이 많다.


내가 가진 수십 년의 노하우란 것도 결국 좁은 세계관 안에서의 일이고 환경에 따라서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다. 손님이 많은 해물탕집 골목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다 건너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이 터졌다. 대부분의 해물탕 집들이 텅텅 빈 가게를 보며 한숨지으며 망해갈 때 그 와중에도 한 해물탕집은 재빠르게 천만 원 들여 시설을 바꾸고 ‘소갈빗살 600g+600g’ 메뉴로 완전 대박을 터트렸다. 장사 잘 되던 순댓국집이 구제역이 터져서 온통 망하게 생겼을 때 어떤 집은 30마리 한 상자에 3만 원 하는 동태로 탕을 끓여서 원가 1000원짜리를 8천 원에 팔아 초대박을 치기도 했다. 또 어느 한편에서는 안 되는 순댓국집을 부여잡고 고통받으며 거래처와 싸워대다 장렬히 산화하고 홧김에 장사 안 한다고 때려치우고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리기사하면서 장사라면 치가 떨린다고 이를 가는 이가 있다. 그럼 대리기사는 쉬울까. 세상이 바뀌고 대리기사가 많아진 지금, 또다시 돈 벌기 쉽지 않은 상황을 개탄하면서 또 누군가를 욕하고 있다. 꿈이 없는 장사는 그저 기술자를 양산할 뿐이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꿈이 있는 장사는 오래도록 헌신해온 무언가가 있더라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가 있다. 큰 그림을 본다는 사업가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새로운 걸 가질 수 있다.


오래전 쇼핑몰에서 점장을 맡아 장사를 하던 때가 있었다. 매출을 이렇게 많이 올렸는데 월급은 왜 이렇게 적게 주냐며 그 당시의 나는 항상 불만이 가득했다. 사실 풀타임 아르바이트 시급과 비슷할 때도 있었는데도 월급 더 올려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속 끓이느라 잠 못 이루곤 했었다. 당시의 내 생각이란 것이 이 일로 능력치를 키워서 연봉을 높이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그 쇼핑몰이라는 환경이 없어지면 내 능력치란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건데 그때는 그런 사실에 대해 숙고하지 못했다.


“너, 나중에 어떻게 살고 싶어?”

이 중대한 생의 질문을 앞에서 내담자의 따님을 다시금 떠올린다. 

21살. 너무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 진정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강력한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 꿈을 위해서 오늘 무언가를 선택을 하지만, 내일이 되어 그 선택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라 판단되면 당장이라도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익숙해질 때에야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얻고, 행복해질 수 있다, 고 21살의 예비 창업자의 손을 붙잡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과거의 가치와 시각을 고수한 채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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