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13년이 넘었구나. 그때도 한낮에는 더웠고, 밤이면 싸늘한 계절 유월로 기억된다. 괴산 청천에 있는 어느 철물점에서 어깨동무 한 번으로 우리는 줄 곳 친구가 되었다. 너와 지겟작대기는 알루미늄으로 되어있고, 등태와 어깨끈은 나일론 소재였지. 나무나 쇠로 만들어진 것보다도 훨씬 가볍고 품위가 있고 단단하고 실용적이면서 몸놀림도 빨랐지. 그때 나는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지도 않았고, 농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도 없었다. 단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일손을 도와준 것이 다였다. 어느 날 뽕나무에 미쳐 양잠하려고 마음먹었던 거야.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는 과정 모두가 쉬운 것은 없었어. 힘든 일 중 하나는 뽕나무를 쳐서 나르는 일이지. 이동 수단에 대해 많은 검토가 필요했지. 경운기는 농가에 필수 품목이라고 하지만 조작 방법도 미숙하고 경험도 없어 포기했어. 트랙터는 뽕나무밭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어렵고, 수익성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싼 거야. 그리고 농가 안전사고는 대부분 경운기나 트랙터 조작 시 일어나지. 여러 대안 중에 선택된 바로 너와의 만남이었지.
일을 함께할 때 친구가 얼마나 대단하게 태어났는지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 친구와 지겟작대기는 호흡이 맞아 짐을 다 실을 때까지 세 발로 버티며 기다리는 은근과 끈기의 근성이 있지. 짐을 적게 싣든 많이 싣든 불평하지 않고 말이야. 내 허리와 척추를 다치지 않도록 허리를 쭉 펴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내가 짐을 잘못 실어 균형을 잃으면 지겟작대기와 협력하여 균형을 잡아주는 지혜로운 친구지. 뽕밭부터 잠실까지 좁은 길, 넓은 길, 길 없는 길도 요리조리 잘 다니지. 산이나 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짐을 나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너를 침이 마르도록 얘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란다.
그러나 가끔 미울 때도 있어. 지겟작대기가 없으면 일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바쁜 시기에 지겟작대기가 없다고 일을 하지 않을 때,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너는 알기나 할까? 물론 지겟작대기를 챙기지 못한 내 책임은 인정해. 친구에게 미안함도 있어. 매년 콩과 들깨를 수확할 때가 되면 친구 허락도 없이 출장을 보내지. 동네 분들과 진천 형님네 집, 그리고 네가 필요하다고 하는 데 가서 며칠간 힘들게 일을 시키지. 친구가 필요할 때는 찾고, 일이 끝나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지. 등태와 지게 어깨끈이 낡아서 못 쓰게 될 정도인데 임시방편으로 쓰고 있어. 지게작대기는 받침대가 떨어져 나간 후부터 나무작대기 대용하고 있지만 부러지고 썩어서 오래 쓰지 못했어.
나는 친구선배들의 무용담을 잘 알고 있어.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 때야.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엄청나게 큰 나뭇짐을 진 나무꾼들이 줄을 맞추어 끝도 없이 내려오는 거야. 차령산맥 능선인 열두 봉에서 맨몸으로 걸어서 오르내리기도 힘든 산이였어. 어떻게 나뭇잎을 묶었는지, 어떻게 실었는지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일이지. 친구선배들이 아니었다면 나무를 지고 내려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나무꾼들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가 도심의 아궁이에 필요했던 땔감을 지고 내려와 먹고사는 일거리가 되었던 것이지.
친구야 ‘새마을운동’ 노래 들어 본 적 없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를 시작으로 일찍 일어나 일을 하여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자는 내용이었어. 그때도 친구선배들이 많은 공을 세웠지만 알아주는 이들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야. 그 후 아궁이가 없어졌고 나무꾼도 사라졌지. 이 밖에도 농촌이나 도시에서 친구들은 건설공사장 시장 역전 등 사방 곳곳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였지.
요즘 지인들에게 친구를 자랑하며 지게사랑을 이야기하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야.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모든 짐을 나르는 세대에 친구는 골동품이라는 것이지. 친구들은 산업현장에서 퇴출당해 동화 속이나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다는 거야. 그것은 친구에 대해 잘 몰라 그런 것이니 이해해 줘.
지게는 신라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역사의 흔적이 있어. 거름 쌀가마 볏짚 나무 등 어떤 물건이건 가리지 않고 운반했지. 지금도 공사 현장이나 시장, 농장에서 필요로 하고 있고 많이들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 앞으로는 친구가 택배기사를 도와야 할 것 같아. 이들은 지금 손수레를 이용하고 있고, 손수레가 갈 수 없는 곳에서는 어깨에 메고 나르고 있어. 친구의 역량과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인식을 바꿔 준다면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져 봐.
친구와 함께한 날도 십 년이 훨씬 넘었네. 강산이 변한 그동안도 친구 덕분에 수월하게 농사를 잘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대하였네. 올해가 가기 전에 등태와 지게 어깨끈 그리고 지겟작대기를 갈아 줄게. 아주 멋쟁이로 변신할 것이 분명해. 내가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조그마한 성의야. 친구도 지금껏 해온 것처럼 변함없이 나와 함께 있어 주리라 믿네. 고맙다 친구!